어수선한 오전이 지나가고

점심을 먹고

양치를 했다

 

사각사각 삭삭삭삭 나름 열심히 꽤 공을 들여서 정말 최선을 다해 양치질을 했다

양치질도 이렇게 정성들여 할 수 있구나

 

하얗고 묽게 힘이 빠진 거품을 툭 뱉었다

오물오물 꼬록꼬록 물로 헹궈냈다

가륵가륵 한 번 더 헹궈냈다

아그르르 또 한 번 더 헹궜다

 

그런데도 아직 개운치가 않아

 

시발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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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과 5월은 한몸뚱아리로 연결된 달이었다.

논문을 주로 쓰고 잡생각을 꾸준히 하고 단정하진 못했지만 하루하루를 버텼다. 연명했다.

 

6월에 접어들면서 다시 새로 일을 시작하고, 논문 통과!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더 복잡했지만 꿋꿋이 버텼다. 시간은 저절로 갔고 어떻게 어떻게 꾸역꾸역 살아졌다.

 

날씨는 상당히 좋았고, 바람쐬는 법을 배웠다. 강바람도 쐬고, 푸른수목원을 발견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불우하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만큼 여러사람을 챙겼고 외로움은 친구로 사귀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논문의 끝을 보았다. 물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문제의식을 잃어버리고 백치가 되었다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제정신을 차리고 다시 백치가 되었다가 정신을 차렸다.

 

5월에 접어들며 오른쪽 눈에 조그마한 반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병원에 가보지 못했다. 논문 최종 탈고하고 인쇄 넘기면 가볼 계획이다. 시간은 저절로 갔다.

 

꿈을 많이 꿨다. 노트북이 산산조각 박살이 나는 꿈을 꾸고 꿈 속에서 엉엉 울었다. 기분이 그닥 좋지는 않았지만 후련했다. 꿈에서 노래를 열창하고 늑대한테 물리기도 했다. 정말 별 꿈을 다 꾸었다. 힘들었다. 진이 빠졌다.

 

슬프고 힘든 일은 혼자 버티면 되지만 기쁘고 좋은 일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번듯한 시대는 아닐지라도 앞의 시기와는 다른 때가 되었다.

 

21세까지를 1시기로, 30세까지를 2시기로, 34세 상반기까지를 3시기로 정하고 이제 4시기가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청동기시대 정도로 해두자.

 

그래도 큰 병 없이 무사히 논문 작업을 어느 정도 마쳤다. 막판에는 어깨와 목덜미를 못쓸뻔 할 것을 응급조치로 잘 넘겼다. 환자가 조금이라도 차도를 보이는 것이 고맙다는 그 병원에는 앞으로도 종종 갈 일이 있을것이다.

 

모처럼 만에 다시 대학로 언저리에 자리잡았다.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 느낌. 생소하지 않은 것도 좋은 것이다.

 

여름을 잘 보낼 준비를 해야한다. 더위에 담담하게 태양에 덤덤하게

 

무언가 그 끝을 알면서도 정성을 다하는 법을 연습 중이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후회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크게 빠듯하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싶다. 마음의 여유를 잃지 말고 6월 잘 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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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과 
모른체 지나가게 되는 날이 오고
한때는 비밀을 공유하던 가까운 친구가 
전화 한 통 하지 않을 만큼 멀어지는 날이 오고
또 한때는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사람과 
웃으며 볼 수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 이것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변해버린 사람을 탓하지 않고, 
떠나버린 사람을 붙잡지 말고
그냥 그렇게 봄날이 가고 여름이 오듯 
내가 의도적으로 멀리하지 않아도
스치고 떠날 놈은 자연히 멀어지게 되고 
내가 아둥바둥 매달리지 않더라도
내 옆에 남을 사람은 무슨일이 있더라도 
알아서 내 옆에 남아 준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주고 
아껴주지 않는 사람에게 내 시간, 내 마음 다 쏟고
상처 받으면서 다시 오지 않을 꽃같은 시간을 
힘들게 보낼 필요는 없다

비바람 불어 
흙탕물을 뒤집어 썻다고 꽃이 아니더냐 
다음에 내릴비가 씻어준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거다. 
아기가 걸어다니기까지 3000번은 넘어지고야 
겨우 걷는 법을 배운다
난 3000번을 이미 넘어졌다가 일어난 사람인데 
별 것도 아닌 일에 좌절하지말자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것은 
너무 일찍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가장 불행한 것은 
너무 늦게 사랑을 깨우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뻐긴다 해도 
결국 하늘 아래에 놓인건 마찬가지인 것을
높고 높은 하늘에서 보면 
다 똑같이 하찮은 생물일 뿐일 것을
아무리 키가 크다 해도 
하찮은 나무 보다도 크지 않으며
아무리 달리기를 잘한다 해도 
하찮은 동물 보다도 느리다

나보다 못난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려 하지말고 
나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하여 질투하지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하늘 아래 있는 것은 다 마찬가지니까

김소벽 /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의 한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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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 드실래요

버얼건 대낮에 시청광장이 훤히 보이는 덕수궁 입구 던X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 먼치킨 조금

여기가 어떤 곳이냐면 그러니까 서울이라고 드디어 서울이구나

전날 밤 잠을 설쳐 약간의 두통이 함께 했는데
전날 밤 잠을 못 잔 것도 아닌 나는 두통은 없었지만 약간의 흉통이 느껴졌다

부석사 얘기를 했다
부석사는 여름도 좋지만
복사꽃 피는 봄에도 참 좋고
하얀 눈 소담스레 겨울도 참 좋다고
참 좋다고 참 좋다고 웃었다

아마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였을테니
그렇게 앉아 있어도 남들 눈 하나 부끄러울 것 없지
부끄러울 일이 뭐가 있겠어
그저 부석사가 참 좋다 맞장구만 쳤는데

여름이었는데 따뜻했다

아 그랬네
하나도 안덥고 따뜻했네
파 란 하늘이 따뜻했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넛 드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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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의 연인

Pulmaya 머릿속 2015. 4. 29. 23:27
산소 같은 여자를 사랑했네
내 세포까지 들어와 시의 노래를 들려주는 여자
공기의 여자 나는 그녀의 연인이되어
바람이 되어 그녀의 주변을 떠도는
음유시인이 되어 햇살의 밀림 속에
꿀을 감추놓았네 공기는
달콤한 사랑처럼 감미로왔고
비아그라처럼 쿵쿵 심장을 울렸고
공기의 살림살이를 위해
가난한 시인은 날마다 시를 써야했네
공기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공기 속에 그녀만 볼 수 있는 투명한
냉장고와 티브이와 음악과 와인을 준비해놓고
산소 같은 여자가 나의 시가 되기를 원했네
태풍의 눈 안에 공기의 여자를 넣고 다녔네
여자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사나운 파도로 포효하고 천둥 번개로
자장가 부르면서 공기를 감싸 안았네 그러나 
잡으려 하면 할 수록 저만치 도망치는 여자
공기 같은 여자
너의 공기 마음껏 들여마신다 해도
깔깔거리며 웃는 여자
화 내지 않는 여자 차분한 여자
나를 흔들 줄 아는 여자
아내로 만들 수 없는 여자 나를 간섭하는 여자
공기의 여자를
난 사랑했네


공기의 연인 / 최 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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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했고 논문을 쓰고 중국에 다녀 옴.

봄은 왔지만 마음은 그닥 따뜻하지 못하고

고민과 번뇌에 근심걱정이 가득한데 담담하게 덤덤하게 견디는 중.

광저우 4박 5일은 참 좋았다. 따뜻한 남국. 새소리가 가득하고 붉고 노란 꽃이 만발했다. 사람들은 조용하고 예의바른 편. 그런 곳에 살아도 삶의 무게는 무겁겠지.

벌써 4월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지난 주에 썼어야 했는데. 때를 놓쳐서 감정 상태가 엉망이 됐다. 논문 시작하고 나서 체력이 상당히 약해졌다. 시신경도 엄청 예민해졌고 몸 전반적으로 매우 건조해진 것 같다. 촉촉하게 살고싶다.

4년 만에 조우한 친구는 의젓하고 듬직한 모습을 잃고 자기네 부장 뒷담화만 계속 해댔다. 다행이야. 널 잊고 살 수 있게 되어서. 우주여행을 떠났다 돌아와 현실에 발 딛고 묵직한 중력을 느끼는 기분이다.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싶다. 천성이 온화하고 따뜻한 사람.

차가운 사람을 만나도 나쁘진 않겠다. 언젠가는 녹아 시냇물처럼 졸졸 흐를테니.

나무나 돌같은 사람은 피하고싶다. 무미건조한 목석같은 사람은 만나고싶지 않다. 이미 너무 많이 상처받았다.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웬만하면 안하고싶다. 나도 소중한 생명체니까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지구상에 아무도 그렇게 생각안해도 나 하나는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얼굴에 딱 철판깔고 행복해지기로 했으니까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지는 않을거야. 이미 충분히 과하게 그랬다.

광동어를 시작했다. 시작만 했다. 잘 하게 될 수 있을까. 노력하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아니 집중력이 부족하다. 수진이랑 hsk스터디도 시작했다. 이것도 제대로 잘 하진 못하고 그냥 하고 있다.

4월에 접어들면서 주말엔 결혼식의 연속이다. 06학번 성목이는 부모님도 못모시고 결혼을 했고, 마음씨 착한 덕연언니는 분홍 수국다발 부케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결혼했다. 짜이르는 세상을 다 얻은 양 개선장군처럼 결혼을 여섯 번은 더 해 본 사람처럼 느끼하게 했다. 내 생일도 결혼식에 갔다. 별 볼 일 없는 인생. 그냥 이렇게 또 한 살 먹는거지. 인격적으로 좀 더 어른이 되어야겠다.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살아야겠다.
이런 정체감도 또 훌쩍 지나가겠지. 눈코뜰 새 없이 바빠 마음의 여유 모두 사라지는 때 또 오면 지금이 그리울거야.
얼른 탈고하고 취업하고 돈 벌고 대출도 찬찬히 정리하고 그러면서 짝도 찾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판에 박힌듯이 평범하게 재미없어도 안정적으로 살면 좋겠다. 사는게 버겁다. 십 년 넘게 덤으로 얻은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는건 너무 버겁다. 매일 용기를 내야하고 뭔가를 마음먹어야 하고 숨을 고르고 입술을 지긋이 다물고 다시 숨 한 번 들이 마시고 웃고.

그냥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봤으면 좋겠다. 버티고 견디고 다짐하고 그런거 하지말고 그냥 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의 섭리인양 그저 그렇게 살아지면 좋겠다.

그래도 따뜻하게 살아야겠다. 누구에게나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 잘 살아야겠다. 단 한 사람에게조차 위로가 되지 못하는 하찮은 상태이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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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 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 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최영미 / 선운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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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같은 2월이 훌쩍 지났다. 명절을 분주하게 쇠고 났더니 금세 끝나버렸네. 이번 명절에는 열심히 만두를 만들고... 일을 그만두고 나서 가사노동시간이 급격히 늘어났다. 설거지하고 빨래 널고 정리 좀 하다보면 반나절이 후딱 지나간다. 집안일을 주로 하며 논문을 틈틈이 쓰고 있는 기분이다. 목차는 짰고 프로포절은 다음주에 하면 된다. 3월의 목표는 논문의 70퍼센트를 마치는 것으로.

명절 전후로 언니들을 많이 만났다. 희끼언니도 만나고 은영언니와 종성선배 서연이네 놀러가서는 계획도 없이 하룻밤 묵고 오기도 했다. 우리피디님이랑 청화네 가족도 만났다. 이래저래 분주하게 많이 만났고, 어제는 괴산으로 시집간 지은언니를 몇 년 만에 만났는데 소민이는 곧 돌이다. 그참에 충주를 들러 경원이와 종현오빠 예린이 가족과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하고 올라왔다. 그밖에도 진실언니 생일 선물을 느즈막히 전달했고 예슬이와 한슬이는 중고등학교 진학을 했다. 몇 년 만에 못갖마 후배 민주랑도 만나서 즐거운 색칠공부 시간도 가졌다. 앞으로 다시 이런 시간이 올까? 지금은 나의 시간은 멈춰 있는 기분이지만 곧 좋은 추억으로 떠올리며 그때가 좋았어 하는 날도 오겠지. 마지막 학기에 새로 입학한 후배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크게 우여곡절 없는 2월을 보내고 3월을 맞이했다.

날씨가 새초롬하니 까칠하게 추워졌다. 벌써 봄이 왔나싶게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다가도 추적추적 비가 오고 휑휑 칼바람이 분다. 봄이 오는구나. 봄이 오려고 이러는구나. 어제는 3월치고는 8년 만에 가장 추운 날씨였단다. 어쩐지 너무 춥더라.

3월 말에는 광저우 황산 언니네 다녀 오기로 했다. 자꾸 잊어버리려는 걸 이틀에 한 번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설마 잊어버리고 못가겠어? 그럴 일은 없겠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은 없겠지. 알람이라도 맞춰놓아야겠다.

이렇게 또 슬금슬금 서른넷이 무르익는다. 어쩌다 이런 일이!!! 정신 바짝 차리고 부지런 떨며 살아야겠다. 올해는 많은 것을 이루리라. 논문 잘 쓰고 다시 일자리도 바짝 구하고 졸업도 하고 짝도 찾고.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정말 다 해야겠다. 열심히 살자. 부지런 떨고 분주하게 움직이자. 어서 봄 오너라. 도란도란 봄 수다 떨면서 즐겁게 콧노래 흥얼거리며 기분 좋은 서른넷 봄을 즐기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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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쇠고 나면 제대로 해가 바뀐다. 때를 넘기지 말고 해야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 것 같아서 두서없더라도 몇 자 적는다.

1월 초에 딱 1년을 채우고 퇴사를 했다. 끝없는 과로와 어수선한 감정에서 탈출했다. 2월 초까지는 이런 저런 일로 엮여서 그만 둔 것이 실감이 안났지만 어쨌든 끝은 났다. 일을 그만두면서 동시에 일본 워크샵을 다녀왔다. 홋카이도는 아름다웠지만 역시나 혼자 자유롭게 가는 여행이 가장 좋다. 그래도 덕분에 하루요 언니와 극적으로 재회했고, 선물로 유자차를 잘 전달하고 왔다. 적게 쓰고 적게 먹더라도 자유의 중요함을 잃지말아야 하겠다.

논문 주제를 정하고 목차를 이래 짜보고 저래 짜보고 자료를 들췄다 메모를 했다 짱구를 굴렸다 방에서 뒹굴다 하늘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딱 한 달 만에 주제를 엎었다. 속이 다 시원하고 후련하고 홀가분했다. 내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 비로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내 격과 수준에 맞는 결정이 이렇게도 편할 수 있구나. 앞으로도 살면서 이 느낌을 잊지말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겠다. 주제를 갈아엎고 진짜 모처럼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푹 잠들었다. 이런 기분도 처음 느껴봤다. 내 스스로 내 분수에 맞는 결정을 하고 그에 따라 느끼는 안정감이라니. 잊지말자. 잊지말자.

이제 논문 쓸 일만 남았다. 그래도 1월 알음알음 쉬었다.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쇼핑도 하고 목욕도 하고 온양에도 다녀왔다. 좋을 때는 한없이 좋고 부딪혀 스트레스 받을 때는 너무 싫지만 어쩌겠나. 부모자식 간인데.

마음에 드는 우산이 있는데 너무 비싸서 못산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예슬이와 한슬이 데리고 노르망디 전시회 갔다가 쿠쉬전 기념품 매대에서 본 꽃우산이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린다. 잊자. 잊자.

조금은 더 쉬고싶다. 살짝 불안하지만 이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좋고 여행도 다녀오고 싶은데 여건은 그닥 좋진 않다. 여행을 못가더라도 좀 더 쉬고싶은 마음이 든다. 모든 것이 미정인 불안한 상태. 뭔가 끝이 없는 낭떠러지로 가고 있는 기분이지만 그래야 번지점프라도 할 수 있는게 지금 상태이니 현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감정에 동요하지 말자. 단단하지만 투명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싶다. 양갱같은 인간? 비누같은 인간이 되면 좋겠다. 지저분하게 흔적이 남지 않고 향기로 남는 사람이 되고싶다. 논문 잘 써보자. 해는 바뀌었지만 아직 묵은 해에 살고 있는 이 느낌. 정신 가다듬고. 1월 흘려보낸 만큼 더욱 단정하게 논문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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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다. 기다렸던 겨울이다.

일은 여전히 바빴고, 사무실을 그만 둘 준비로 더 바빴다.

 

논문을 쓰기로 확정했다.

주제를 잡고, 목차까지는 겨우 짰다. 여러 사람의 머리와 손을 빌려서 내것으로 만들어 갔다.

 

생활은 아직 단정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참, 노트북을 새로 마련했다. 논문 쓰려면 기존의 노트북으로는 아무래도 버거울 듯 하여 새로 장만했는데, 크기와 무게가 늘어나다 보니 가지고 다니는게 좀 버겁다.

곧 있으면 거처도 없어지니 한동안 장돌뱅이 신세가 되겠지만, 중심을 잘 잡고 꿋꿋하게 해나가야겠지.

 

4학기가 끝났다. 이번 학기도 만족감보단 아쉬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시간은 가고 일정은 일정대로 진행이 된다. 열심히 논문을 쓰면 내년 여름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정화가 서울로 오게 되어 바라던대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더 위로를 받은 것도 크다.

함께하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 채워졌다.

도서정가제 실행때문에 계획에 없던 도서구매가 많았다. 사놓고 다 읽지 못한 책이 산더미다. 죽기 전에 꼭 다 읽어야지.

 

12월 19일 역사적인 사건으로 나의 20대의 공든 탑이 무너졌다.

젠가를 조심히 쌓아올리다가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옆테이블의 고약한 누군가가 툭 쳐서 무너뜨린 기분이랄까. 일시적으로 상심했고 울컥했지만 사람들이 다 살아 있으니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쌓아 올려야하겠지.

내 실력을 더욱 키워야 한다. 분노는 좋은 에너지원이지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결국 실력 뿐.

굴복하지 않는다. 실력양성론이 아니고, 도광양회 하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의리를 지킬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은 결국 손을 놓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다 할 이벤트 없이 연말은 마무리되고, 훌쩍 2015년으로 넘어왔다.

 

양뿔처럼 단단하고 내실있는 사람이 되자.

양털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자.

산양의 발굽처럼 험준한 산비탈도 끄떡없이 오르는 사람이 되자.

 

현재를 충실히 살고 내일을 준비하고 미래를 도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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