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한몸뚱아리로 연결된 7월과 8월을 묶고, 9월의 반덩어리를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쩜오의 수작을 부리기로 했다. 그냥 여름이었으니까. 더웠으니까. 두 달 반은 호되게 더웠으니까. 갖다 붙여도 괜찮은 조합이지 않나.

 

7월엔 논문을 제출했지. 8월엔 졸업을 했다. 폭염주의보로 콩죽같은 땀을 뻘뻘 흘리고 모처럼 만에 가족행사로 저녁까지 먹었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학사모에 가운을 입었다. 학부 땐 장기 출장으로 졸업식 언저리에도 가지 못했는데. 그 더위에 학사모 쓰고 가운입고 일그러진 표정이었지만 사진도 찍고.

 

논문은 학교 도서관에 올라왔는데 초록에 또 오타가 보인다. 정말 열흘 우울증을 앓았다. 글씨는 아무 것도 쓰고싶지 않지만 일을 해야 하니 뭘 안쓸수도 없고.

 

오랫동안 끊으려 했던 페이스북 포스팅을 끊었다.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할 말도 없고 보여줄 것도 없고. 결정적 요인은 1, 2년 전 같은날 내가 썼던걸 보여주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손발이 오글거리니 하려던 말도 안하게 되더라.

 

새로 다니게 된 직장은 새로 다니는데도 새롭지 않다. 우중충한 분위기를 개선하고자 백골이 진토되도록 쓸고 닦아도 내 능력의 한계가 온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이고 본질적이며 구조적인 문제가 없어질 것 같지 않다. 솔직히 당장 내일이라도 출근을 안하고싶다. 한 달 정도 전부터는 매일 아침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속상하다. 이런 어수선한 마음을 매일매일 다잡느라 신경성 소화불량이 생겼다. 그래서 점심을 웬만하면 안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소화가 안되서 뭘 먹어도 먹는 것 같지도 않고 먹고나면 더부룩 하고. 아침은 먹고 출근하고 퇴근하면 밥을 먹으면 되니까 점심 한끼정도는 그냥 적당히 넘어가도 된다. 일에만 집중하려고 하지만 일 외적인 부분에 대한 되도 않는 결벽증 때문에 스스로를 좀먹고 있다. 어떡해야 할까. 마음이 무겁고 머리도 무겁다. 어깨도 무겁다. 뭘 어떡해야 할 지 정말 모르겠다.

 

8월 첫째주에는 은주언니와 암살을 봤다. 800만 돌파에 숟가락 살포시 얹었다.

8월 마지막주에는 아팠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자마자 감기가 그렁그렁 괴롭혔다. 괴로웠다.

배탈도 났다. 기침에 토사곽란을 동시에 하고 났더니 진이 다 빠진 것 같다. 이렇게 나이를 먹는건가. 휴

 

별 것 없는 일상이지만 9월 초에 뭔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웃겼다. 작년 가을에도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더니. 가을이라 그런가. 잠깐 즐거웠고 현실은 또 아무 감정이 없고 그냥 끝났다. 벌써 12년도 더 전의 최악의 인간과 꼭 닮은 다른 개체와의 피곤한 만남을 4시간 가까이 견뎌낸 후 스스로 대견했다. 나이도 먹고 인내심도 강해졌구나. 내가 웬만큼 살긴 살았나보다. 전혀 관계도 없는 비슷한 인간을 다 만나다니. 입술까지 핏기없는 투명한 피부에 머리 숱 많은 것 까지. 말투에 억양에 제스추어에 대화를 되받아치는 순발력에 철없음에 싸가지없음에 냉정함에 배려없는 것 까지도. 지가 좋아하는 것에만 정성을 쏟고 그렇지 않은 것은 폐품취급하는 더러운 품성까지도. 아마 담배를 하루 한갑펴도 냄새도 안나겠지. 지긋지긋하다. 끝났다.

 

누군가는 나의 이름을 부르고 나는 미처 하지 못했던 욕지거리를 해 주었고. 그것도 속이 시원하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휴가도 안가고 넘긴 무덥고 무기력한 여름. 오늘 마트에 갔더니 내 스카프를 보고 완전 가을이란다. 가을오면 좀 나아질까.

블로그 이미지

Pulmay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