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분명 여름이 되었는데 몸과 마음은 약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 느낌이 난다.

통과된 논문에 또 여러 번 손을 대고 또 대고 인쇄에 재인쇄, 배송도 한 번에 말끔하게 처리되지 않았고. 찍어놓고 보니 또 오타가 나오고. 무슨 3D 입체 영상도 아니고 두둥 지맘대로 효과음까지 내면서 오타들이 슈욱 떠올라 아 이건 정신병이다 싶어 그냥 던져버렸다. 뭔가 개운한 느낌은 안들지만 홀가분한 느낌은 조금? 아주 조금 들고 지긋지긋 끔찍한 이 녀석을 다시는 쳐다 보지 않겠다는 우악스런 마음도 좀 들었다.

 

문제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인물과의 반갑지 않은 만남으로 인해 지난 2년반의 내 학업의 시간이 한순간에 빛이 바래버렸다는 것이지...

나도 모르게 3년 전 이맘때에는 분명히 몰두할 무언가를 찾아야 할 만큼 표면적으로 피폐하지는 않았는데 돌이켜 보니 그것들은 잠복해 있었다. 잠복된 부정적 요소들의 일종의 승화과정이라는 깨달음이 이제서야 들고 나니 모든 것이 허탈해졌는데 그걸 티안내느라 매우 힘들다. 내가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하거나 봉인하지만 않았어도 그 뜻하지 않은 곳에서의 반갑지 않은 만남은 사전에 차단할수도 있었다. 이번에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발생한 것은 내가 돌아보고 생각하기 싫은 여러 문제들을 물리적 차단에 가까우리만큼 봉인한 것 때문이다. 물론 의도적인 결과물은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스스로가 많이 힘들었고 그걸 겪는 과정에서 내 나름대로의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하고, 사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물론 절대 그렇게 되고싶지 않지만... 결과는 똑같을 것 같다.  피를 토하지 않으면서도 피를 토하는 기분이 들었던 시간이었으니까. 아무에게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살짝 얘기한다 하더라도 적당히 둘러둘러 팩트를 언급하는 정도에만 그쳤고 내가 그래서 되게 힘들어. 진짜 죽을만큼 힘들다. 이런 류의 얘기는 하지 않았고. 만약에 그렇게 얘기했다면 스스로도 감정이 증폭되어 불쌍한 년 코스프레를 지지부진하게 했을지도 모르지. 혼자 쿨한 척 옥상에 올라가 맥주 한 잔 하고는 그래 순리대로 하자. 뭐 이딴 어줍잖은 천사표 마인드 컨트롤이나 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데 그런 온갖 잡다한 부정적인 네트로피들의 응집과 승화의 결과가 내 2년반의 학업이라 생각하니. 배지터가 된 기분이다. 악한 에너지도 에너지이긴 하니까.

 

그래서 이제 다시 그 다음 단계를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선뜻 마음의 결심도 안서고 이게 내가 결정해서 온 것은 맞는데 그 결정이 진짜 내가 태초부터 가지고 태어난 나의 미션 뭐 이런 성격의 것이 아니라 개연성이 훅 떨어지는 승화의 과정이라는게 참.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된걸까. 지난 3년을 연명하기 위한 장치로서밖에 의미를 격하시키고 싶진 않지만 본질이 그렇다. 아 젠장

 

남은 7월 부지런히 생각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야 한다. 결론이 쉽게 나진 않겠지. 8월까지는 계속 고민할 필요가 있다. 떠나고싶지만 돈이 없다. 에휴

 

그래도 차현진양의 도움으로 영문 초록을 완성하고. 지도교수님의 정말 지도를 넘어선 지도로 논문이란 녀석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이 녀석이 학문의 적자가 아니라 감정의 사생아라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너의 출생의 비밀. 그렇다고 너의 존재의 의미가 퇴색되진 않을테니..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방법을 터득해야겠다. 메르스 따위 아무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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