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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별 보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저기 몽골의 허허벌판 초원이든 첩첩산중 히말라야든 가깝게는 지리산 자락 산장이라도 한 번 쯤은 기꺼이 떠나 무한한 하늘에 끝없이 반짝이는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으로서 즐거울 수 있음을 감사할줄 아는 그런 사람일테니까.

그런 사람은 아마도 도시의 번쩍거림이 가끔은 답답하다고 느낄 것이며 끝도 없는 무언가를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야만적인 삶은 살지 않을 것 같다.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것이고, 여유를 손바닥에 가만히 꼬옥 쥘 줄 아는 사람이겠지. 겉멋과 허영 체면치레 허세 이런 말들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융통성이 없는 고지식쟁이도 아닐 것 같다.

나의 손바닥과 당신의 손바닥이 빈틈없이 차악 밀착하여 서로의 손가락이 틈틈이 어우러져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박자감 있게 발걸음을 따라 마주잡은 두 손이 설-설 그네타듯 리듬을 타면 세상을 다 얻은듯 부족할 것이 없을텐데

한여름에도 서로는 끈적거리지 않고 한겨울에도 함께 있으면 뜨끈뜨끈 온돌방처럼 훈훈한 그런 사이. 뜨겁지는 않아도 괜찮지만 차갑지는 않을 그런 관계.

한 마디 말이 통하고 눈빛으로 소통하며 아무리 피곤해도 예의를 지켜 서로의 짜증을 전가하지 않을 진지함.

예상치 못한 불행에도 서로에게 힘이 되며 당신의 존재만으로도 믿음직스럽고 안심이 되는 영원한 내 편.

당장 만나지 못해도 죽기 전에는 꼭 만나 당신을 만나기 위해 나는 태어났노라고. 태어나 주어 너무 고맙다며 서로를 귀하게 여길 참된 만남.

나도 그런 사람 만나서 같이 별 보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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戱弄

Pulmaya 머릿속 2012. 12. 11. 01:42
한순간 깊게 잠들었다 쐑쐑거리는 잔기침과 함께 잠이 깼다.
문득 꿈에 중학교 1학년 어느 시점으로 돌아갔고 볕좋은 봄날인지 초여름인지 초가을인지 운동장 옆 보도블럭이 가지런히 깔린 그 길을 걸어가는데 사고치고 정학먹고 수업도 못듣고 뒷통수는 깨져 반창고를 붙인 채 화단 청소를 하던 그 중 3 오빠가 보였다. 정학먹고 하는 일치고는 너무 열심히라 좀 의아해서 잠시 쳐다봤을 뿐인데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로 쓱 돌아보더니 살짝 윙크하며 씨익 웃어주었지.

난 조금 당황해서 재빨리 자리를 떴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희롱이었는데. 불쾌하지 않았던건 난 그때부터 좀 변태였던걸까.

이름이라도 알아둘 걸 그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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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

Pulmaya 머릿속 2012. 11. 3. 14:21
어느 순간이었다.

이것이 사랑 호감 연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애착'이라는 교통카드를 움켜쥐고 환승만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텅 빈 정류장 싸늘한 벤치 위로 올라오는 냉기가 골반을 파고 든다. 최종 종착역이 어디인지 모른채 지나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삑 하고 카드가 찍힌다. 환승입니다.

다시 어느 정류장에 도착한다. 이번엔 조금 오래왔다. 백 원 내지는 이백 원 정도의 추가요금이 발생했다. 길 한가운데 중앙차로에 서있는 것이 버겁다. 같은 차들인데 어찌 그리들 매연을 풍풍 뿜어내는지 눈이 따끔거리고 목구멍이 매캐하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 싶으면 일단 어디라도 가자 싶다. 다시 삑하고 환승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멀리 가보겠다고 파란 버스 초록 버스 말고 빨간 버스를 타 볼까 한다. 환승 할인이 안되는 버스도 있어. 뭐 그래봤자 고작 이천원도 되지 않을 저렴한 교통비쯤.

좀 오래 가보겠다고 광역버스에 올라탔는데 맙소사 앉을 자리가 없네. 모처럼만에 큰맘먹고 구두도 7센치 짜리 신고 나왔는데 이게 뭔 고생이야. 강남대로 지나 고속도로를 타고 차들이 움직일 생각을 안하자 그만 바닥에 주저 앉는다. 남들 눈 신경 쓸 겨를이 어딨어. 사람들 표정도 너 참 딱하다 싶은갑다.


결국 다시 내려 이번에는 전철을 타볼까. 무미건조하고 재미따위는 하나도 없는 각박한 전철은 숨통이 막혀 오래는 못타겠다.

결국

오너드라이버가 되는 수 밖에-
연비 좋고 죽죽 잘 나가는 걸로 차 한 대 뽑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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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

Pulmaya 머릿속 2012. 8. 26. 17:09

참 무모하게 더웠던 여름이었다. 더위때문에 세상을 하직하고 만 가여운 생명이 하나 둘 늘어갔다. 해가 갈수록 괴물처럼 더워질 여름이라 생각하니 전쟁에 임하는 사람처럼 단단히 각오하지 않으면 나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맛 본 첫 해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여름 더위와의 한 판 승부에서 KO패를 눈 앞에 두고서도 번번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한 인간에 대한 증오심때문이었는데, 그 인간을 생각하면 정수리에서 꼬리뼈까지 타고 내려가는 섬뜩함때문에 이번 여름은 더위에 정신이 혼미해 질 때마다 그 섬뜩함을 상기시키며 제정신을 차리곤 했다.

어중간한 삼십년 인생에서 더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지는 일도 없지는 않았을텐데 감각이란 미묘한 것으로 시차와 거리감이 있어 항상 지나간 일 보다는 근래에 발생한 일들에 대해 더욱 또렷이 기억하는 법이었다. 그래서 당분간 한 인간을 향한 증오심은 계속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이번 경우가 좀 어렵고 지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개별 사건에서 오는 상황이나 상태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인간과 같은 공간에 존재했던 내가 그 인간과 개별적 존재로 느꼈던 -나의 이해관계와는 상관없는- 그 인간의 가식, 그리고 그 가식에 대한 원인불명의 증오심, 그 증오심에서 비롯된 앙심. 이런 나쁜 것들로 이루어진 감정은 정화되기도 희석되기도 쉽지 않다.

지금은 폭로할 때가 아니다. 어쩌면 나의 감정이 과도하게 증폭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증폭되어 있다고 해서 허구는 아니기 때문에 이 거품이 사그라들고 알짜배기만 남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그 대상은 별 볼일 없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에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그런 비효율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빈대가 뚱뚱해지기를 기다리거나, 빈대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흡혈귀였다 뭐 이런 반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기다려야 한다. 십년에서 십오년 후를 상상해 본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빈대의 배를 짝- 터트리는 희열감을 맛보게 될 수도 있고, 흡혈귀로 변신한 빈대에게 강렬한 햇빛레이져를 발사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도도한 최후를 목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실은 빈대는 여전히 빈대로 남아 있을테니 십년에서 십오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내 자신이 빈대를 미워하고 증오했던 사실조차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그 얄팍한 감정을 휙-하고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스스로 내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내가 못견뎌 하는 것은 인간의 '가식' 인데, 동물이 아닌 인간은 누구나 가식적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내 스스로는 그렇지 않느냐? 끊임없이 자문하고 자답해야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 식의 이중잣대로는 마음 편하게 살기 어려운 세상 아닌가. 스스로가 이중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보자. 나는 특정 인간의 가식을 증오하는 중이다. 첫 번째 해결책으로 그 인간과의 관계를 끊었다. 그러나 관계를 끊는 것 만으로 증오심이 다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감정을 잘 다스리고자 노력 중이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인데, 더 이상 네가 마음 상하고 상처받을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킨 후, 설사 유감스럽게도 또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해도 너의 가치와 존재 자체가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너는 외부의 자극과 무관하게 독립되어 있다고 내 스스로를 다독인다.

어쨌든 시간이 필요한데, 단순히 시간만 필요한 것은 아니며 그 시간을 잘 채울 여러가지 요소들이 필요하다. 공허한 시간은 감정을 증폭시키기 마련이므로 이제부터는 공허함을 깨고 그 틈을 채우는 요식행위가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은 노동을 하고 밥을 먹고 먹은 것을 배설하기도 하며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고 잠도 잔다. 이 모든 것이 시간을 채우기 위한 행위이다. 앞으로의 시간들을 어떻게 잘 채울 것인지 조곤조곤 계획을 세워 볼 작정이다.

내년 여름은 더 더울지 모르는데 피서를 위해 증오심을 붙잡고 있는 어이없는 짓은 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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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

Pulmaya 머릿속 2012. 7. 20. 00:56
그런 날이 있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것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것이 딱 꼬집어 요거다 하기 참 뭐한 그런 날-

그런 글도 있다. 시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닌 것이 수필도 기사도 아닌 그런 글. 누구는 생활글이라 하고 누구는 잡문이라고 하는데 꼭 그렇게까지 험하게 부를 필요있나. 그냥 그저 단 한마디 글.이라고 부르면 그만인 것을-

어릴 적의 나는 책귀신이었다. 엄마의 기억대로라면 내가 글을 익히게 된 계기는 내 동생이 아직 우리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나는 채 두돌이 되지 않았고 온 몸에 에너지가 가득넘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 집안을 빨빨거리며 뛰어다녔는데 때마침 아랫집 언니는 고3이었고 독서실 갈 형편은 못되었고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공부를 하는데 윗집 꼬맹이가 또르르르 쪼르르 맨날 뛰어다니니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아랫집 아줌마가 간절하게 우리 엄마에게 애원하기를 올 여름에 애기가 나서 우는 거야 그때가서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제발 우리 딸내미 공부 하다 신경질 안내게 이 집 애기 좀 못뛰어다니게 해달라고. 스물여덟 우리 엄마는 얼마나 난감했을까. 특단의 조치로 과감하게 육십권 짜리 금성출판사 그림동화 전집을 지르며 하루에 한 권 씩 두달을 버티고 한 번 더 돌려보면 서너달은 버티겠거니 했지만... 하루에 한 권은 무슨 두세권 씩 마구 진도나가버려 채 한달도 안되어 육십권의 맨마지막 책이 핸젤과 그레텔이었는지 성냥팔이 소녀였는지 그랬는데 뱃속에 내 동생은 책만 읽어주려하면 그렇게 졸았대나- 동생이 졸았는지 엄마가 졸았는지 이제는 알 길이 없고 나는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열 번 읽어 그 십이페이지인지 십육페이지 정도 되는 그 책을 어느새 씹어먹어버리듯 싹싹 소화해내더니 어느 날 부터는 뽀뽀뽀와 우유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읽더니 한 날은 그 옛날 기름회사 유공의 유를 우유의 유라며 엄마를 가르쳐 엄마가 기겁을 했다나 깜놀을 했다나.

어쨌든, 가르쳐 준 적은 없지만 알아서 배운 글자랑 친구먹고 책볼때는 밥도 안먹고 물도 안마시고 잠도 안자고 그냥 책만 읽는게 고삼때 까지도 그래 지내다 재수하고 대학오고 나서 그제서야 책 아니라도 재미있는게 많다는 걸 알았는데 마지막으로 식음수면 전폐하고 읽은 책은 이천오년 이월 외가에서 빌려온 조정래 아리랑 태백산맥 스트레이트로 나흘동안 읽은 기억이 끝이고 그 다음부터는 이상하게 책만 잡으면 채 열장도 한번에 읽어내리는게 쉽지 않았다. 근 이십년을 내 몸속에 함께하던 독신(讀神)이 떠나가신 듯 했다.

그 후로는 사는게 별다른 즐거움이 없고 책을 읽어도 별 감흥이 없어 다시 독신님 강림하시라고 틈틈이 기도해보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제 백면서생 꽃놀음은 그만하고 먹고 살 궁리 하며 살라고 그 분이 다시 안오시는갑다.


아 그런 날 다시 올까.

몇 손가락 안에 들 너를 처음 만났던 특이하고 특수하고 특별했던 그날같은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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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maya 머릿속 2012. 5. 14. 00:29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는 아니지

꽤 오랫동안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인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왜 너는 그렇지 못하냐고 독하게 괴롭혔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데 왜 너는 나를 사랑하냐고. 징그럽다고. 그만하라고.

나의 사랑은 추하고 비뚤어진 것이었다.

어느 순간 그것을 내려놓고 깊고 긴 고민에 들어간다. 사랑은 뭘까? 사랑하면 어떨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요소
신경쓰임
보고싶음
배려
고운말
의리
양보

꽤 오랜 시간 끝에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지난 날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저 1번과 2번 까지만 해당되는 '감정'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충격이다.

그리고 다시 곰곰이 따져본다.

신경쓰임
보고싶음
배려
고운말
의리
양보

이 기준대로라면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된다. 물론 불완전하지만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긴하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태어나서 처음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안된다.

그러나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산다고 했다. 나는 네가 사는 그 세계는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물어보기 겁났다. 진짜 다른 세계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는 아니지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참 서글픈일이다. 밤새 펑펑 울고 싶을 뿐이지만 그냥 훌쩍이며 자리에 눕는다. 내일 출근해야 되니까.....



오늘 부로 죄인들은 모두 사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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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한 판

Pulmaya 머릿속 2012. 4. 26. 21:42
마트에서 삼십개짜리 계란 한 판 사서 계란 위로 다시 계란판 덮고 가는 노끈으로 동동 묶어서 조심스레 들고 집에 와서 식탁 위에 올려 두고 한 숨 돌리고 냉장고 문 열고 하나씩 하나씩 꺼내 집어 넣다보면, 그 중에 꼭 한 두 알은 살짝 금이 가 있거나 무언가에 콕 찍혀 빼꼼히 구멍이 뚫려 있거나 심지어는 반틈이 쫙 갈라져 당장 계란후라이라도 해먹지 않으면 여엉 버리게 생긴 것도 있고 어떤 날은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손에 힘이 툭 빠져버려 그대로 바닥에 탁 떨어뜨려 깨먹는 날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 요놈의 남은 계란들 죄다 못쓰겠구나'하고 내다버리는 법은 없지.

이제 다시 새로운 판에 계란 한 알 조심스레 얹으며 다짐한다 어떤 해는 맥반석 계란이 어떤 해는 훈제란이 어떤 해는 요즘은 보기도 힘든 메추리알이 또 어떤 해는 어디서 왔는지 출처도 알 수 없는 오리알이 떡 하니 올라가 앉아 있을지도 모를 또 하나의 새로운 계란 한 판을 조심스레 모시고 가며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이니까, 나는 그래도 나를 섬겨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내 나이 꽉 찬 만 서른 하고도 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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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Pulmaya 머릿속 2012. 2. 8. 23:55
사람들이 왜 시를 읽는지 잘 몰랐다

기다림은 늘 지루했다

조만간 전화드릴게요
나중에 밥 한번 먹자
그래 꼭 연락하마

도대체 언제?

공허한 약속에 무너지는 못난 내가 싫었던게지

오늘은 시를 봤다

때론 씨익 웃고 그러다 입술을 꾸욱 다물고 심각해졌다가 흐흐흐 하고 음흉하게 웃다가 흐음 하고 짧은 한숨도 쉬었다가 오호 하고 솔깃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기다리는 건 역시 지루했다

그럼 한마디 하겠지
"누가 너보고 기다리랬냐"

그래 누가 나보고 기다리라고 한 적 없지

오늘 나는 그냥 시를 읽은거지

이제야 사람들이 왜 시를 읽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아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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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

Pulmaya 머릿속 2012. 2. 5. 01:05
어디로 간걸까
나는 아무것도 공감하지 못한다

타인의 기분, 심정, 처지, 암시 그리고 복선

모든 레이더는 오로지 내부를 향한 채 방향을 상실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의 본질이 개선되지 않는다 전-혀-

사실 별로 노력한 것도 없다
그저 민망할 따름

뼛속 깊이 박힌 촉수를 아무리 끄집어 내려고 해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어디 간게 아니라 애초부터 없었던걸지도

이런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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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뼈

Pulmaya 머릿속 2012. 1. 11. 01:03
갈비뼈가 삐그덕거리던 시간들이 있었다

나란히 몇갈래로 갈라진 그 뼈들이 제각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거리면 장마철 오래된 마루 사이사이에서 들려옴직한 삐그덕삐그덕 소리가 몸통 깊숙히 파고 들었다

난 진짜 병이 났을까봐 병원에 가보려고도 했다.

갈비뼈들이 삐그덕거릴때면 숨쉬는 것도 죄악이었다
살아있다는 존재감이 혐오스러워 질때마다 갈비뼈들은 옴직거렸다
갈비뼈들이 옴직거릴때마다 살아있다는 존재감이 혐오스러웠다


그는 물었다
심장에 바람이 차 풍선처럼 부풀었다 슈욱하고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을 알겠냐고 물었다
나는 알 것 같다고 답했는지 그냥 고개만 끄덕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긍정의 대답을 했다

나는 그에게 갈비뼈가 좌우로 어긋나면서 삐그덕거리는 느낌을 알겠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면 알 것 같다고 할 지 고개만 끄덕일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의 답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통증에는 위로가 약이 되지 못한다고 확신했다

그저 바라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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