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

Pulmaya 머릿속 2012. 2. 5. 01:05
어디로 간걸까
나는 아무것도 공감하지 못한다

타인의 기분, 심정, 처지, 암시 그리고 복선

모든 레이더는 오로지 내부를 향한 채 방향을 상실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의 본질이 개선되지 않는다 전-혀-

사실 별로 노력한 것도 없다
그저 민망할 따름

뼛속 깊이 박힌 촉수를 아무리 끄집어 내려고 해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어디 간게 아니라 애초부터 없었던걸지도

이런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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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뼈

Pulmaya 머릿속 2012. 1. 11. 01:03
갈비뼈가 삐그덕거리던 시간들이 있었다

나란히 몇갈래로 갈라진 그 뼈들이 제각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거리면 장마철 오래된 마루 사이사이에서 들려옴직한 삐그덕삐그덕 소리가 몸통 깊숙히 파고 들었다

난 진짜 병이 났을까봐 병원에 가보려고도 했다.

갈비뼈들이 삐그덕거릴때면 숨쉬는 것도 죄악이었다
살아있다는 존재감이 혐오스러워 질때마다 갈비뼈들은 옴직거렸다
갈비뼈들이 옴직거릴때마다 살아있다는 존재감이 혐오스러웠다


그는 물었다
심장에 바람이 차 풍선처럼 부풀었다 슈욱하고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을 알겠냐고 물었다
나는 알 것 같다고 답했는지 그냥 고개만 끄덕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긍정의 대답을 했다

나는 그에게 갈비뼈가 좌우로 어긋나면서 삐그덕거리는 느낌을 알겠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면 알 것 같다고 할 지 고개만 끄덕일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의 답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통증에는 위로가 약이 되지 못한다고 확신했다

그저 바라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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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어느 언덕배기 동네 중턱즈음에 조그만 의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평범한 동네 내과라 계절이 바뀌는 어느 날은 콧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로 북적댔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날은 그전날 찬 것을 많이 먹어 배탈이 난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죠.
그래도 일년 365일 매일 바쁜 병원은 아니었는데요, 환자가 뜸한 날 점심 무렵이면 어김없이 병원 문 밖에 조그만 팻말이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기억을 잘라 드립니다'

아니, 미용실도 이발소도 아니고 머리를 잘라 주는 것도 아니고 기억을 잘라 준다니요?

이 팻말이 나붙은 날은 일주일에 며칠, 한달에 몇 번, 이렇게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언제가 그날일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알고 있다면 그 조그만 의원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정도일까요? 그리고 그 팻말은 상당히 작아서 유심히 눈여겨 보지 않으면 팻말이 붙었는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많지 않은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붙어 있었지요.


때는 봄날입니다. 꽃가루가 풀풀 날리는 때도 살짝 지났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그런 봄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자기 자리에 앉아서-그 자리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살짝 졸린 눈을 끔뻑끔뻑 거리고 있습니다. 언덕배기 중턱의 그 동네병원 앞에 왠 아가씨가 천천히 걸어오다 섰습니다.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길지도 짧지도 않은 생머리가 어깨 길이만큼 내려오고,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체격에 오른손에는 점심 식사 후 디저트로 마신듯한 테이크아웃 음료 컵을 들고 있네요. 그냥 아가씨라고 하려구요. 아가씨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다 병원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흐읍-하고 숨을 들이쉬고 병원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갑니다.

"어서오세요. 저희 병원 진료 처음이신가요?"
"저..밖에.."
"네? 아- 문 앞에 붙은 팻말보고 들어 오셨어요?^^ 저희 병원 진료 처음이시면 환자 카드 간단하게 작성해 주시면 접수해드릴게요."

아가씨는 약간 머뭇거립니다. 간호사 선생님은 익숙하다듯이 안내를 합니다. 대기실에 다른 환자는 없습니다. 길 가로 난 제법 큰 창으로 햇빛이 따뜻하다 싶게 들어옵니다. 아이보리보다는 조금더 노랗고 달걀 노른자보다는 조금 연한 그런 햇빛입니다. 환자 대기실의 소파는 그보다 조금 더 짙은 베이지 색입니다. 창틀로는 종류가 다른 화분이 네 개, 아니 조그만 선인장까지 다섯 개 있습니다. 건조하지도 습하지도 않은 실내입니다. 소리가 들릴락말락하게 음악이 흐릅니다. 클래식 같기도 경음악 같기도 한 피아노와 바이올린 곡입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생소한 곡은 아닙니다.

아가씨는 약간은 긴장한듯, 처음이라 어색한듯 소파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천천히 시선을 옮기다 이따금 손에든 음료를 마십니다. 커피인지 허브차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컵이 투명하지 않은걸로 봐서 레모네이드나 아이스티는 아니지 싶습니다.

잠시 후 간호사 선생님이 아까와 같은 말투로 안내합니다.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밝고 명랑하지만 빠르거나 산만하지 않습니다. 눈웃음이 살짝 드리워 목소리와 얼굴만으로는 나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얀 얼굴과 반팔 유니폼이 늘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티가 나는 정도입니다.

아가씨는 대답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을만큼 살짝살짝 발걸음을 떼며 진료실로 들어갑니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의사선생님이 가볍게 웃으며 인사합니다. 차트를 보거나 모니터 화면을 보며 인사하는 여느 선생님과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습니다. 차분하다 정도가 어울리겠네요.

아가씨는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듯 가볍게 침을 꼴딱 삼키면서 이번에도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천천히 진료실 문을 닫습니다. 그러고는 의사선생님 책상 옆 동그란 의자에 앉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먼저 말문을 엽니다.
"오늘 날씨 괜찮죠? 이런 날은 병원도 조금 한가하거든요. 환자분은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선생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합니다. 여선생님인데 화장은 거의 한듯안한듯 하고 테없는 안경너머로 크지 않은 눈이 현명해보이는 인상입니다. 차가워보이거나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은 아닙니다.
"저... 기억을..."
아가씨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 어렵사리 말문을 엽니다.
"편하게 말씀하시면 되요. 어디가 불편하신지 자세히 말해주시면 저로서도 큰 도움이 되거든요."
선생님은 여전히 차분합니다. 이 병원 안에 어색한 사람은 아가씨뿐인가 봅니다. 아가씨는 무슨 말을 하려는듯 마려는듯 입술을 움직거립니다. 선생님은 아가씨와 눈을 맞추고는 살짝 미소를 띕니다. 자세히 보니 선생님의 귀밑머리와 구렛나루에는 흰머리도 제법입니다. 간호사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언뜻 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아가씨는 아직 말문을 열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양손 검지손가락을 맞붙이고 꼼지락 거립니다. 아직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꽤 오랜시간이 지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가씨가 말문을 열려면 좀 더 기다려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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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maya 머릿속 2011. 12. 16. 18:00
-겨울잠
내 기억이 맞다면 언제부터인지도 기억이 안날때부터 인간도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야 된다고 생각했다.

먹이는 부족하지 않으나, 몸에 털이 덥수룩하지 않은 인간들이 아무리 남의 털을 몸에 둘러도 추운건 마찬가지고, 어느 순간 부터는 이렇게 겨울에도 여름처럼 살려고 에너지를 낭비할바엔 차라리 겨울잠을 자는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20대 이후로는 거의 매년마다 겨울잠에 대해 생각했고 올해 역시 겨울잠은 곰이 아니라 인간이 자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물씬물씬 끓어오른다.



-습도
습도라는 것. 그저 여름을 무덥게 하거나 꿉꿉하게 하는 것만 생각했지, 겨울의 건조함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해 본 적 없었다.
올 겨울에는 겨울의 건조함에 대해 정말 깊게 고민한다.

우선 습도가 낮으면 음식이 잘 상하지 않는다. 곰팡이도 거의 피지 않고, 쉬어버리는 일도 거의 없다. 일주일동안 음식이 그릇에 그 모양 그대로 있는걸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난방도 마찬가지다. 온돌 모사품인 전기장판을 아무리 찜질방처럼 틀어제껴도 이불 한번 펄럭이면 정말 단번에 사악-식어버린다.

습도는 생활을 지배한다.




-버릇
글쓰기 수업을 들을때부터였는지 수업이 끝나고 난 후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감각현상들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버릇이 생겼다.

좀 개떡같다.
좀전에도 잠깐 낮잠에서 깨서 창밖으로 날아가는 까마귀떼를 보면서 '새들이 날고 있다.' '까마귀떼가 날아간다.' 적어도 두 문장으로 정리하고 있는거다.
이런 불필요한 버릇은 왜 생긴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사실 귀찮아서 알고 싶지도 않고, 그저 일종의 문장정리결벽증 쯤으로 분류할만한 이 두뇌활동때문에 뇌의 용량이 상당히 줄어든 느낌마저 든다.

방법은 별 수 없다. 반복적으로 정리되는 부분들을 뇌 밖으로 끄집어 내는수 밖에-

겨울잠과 습도.

오늘부터 차근차근 끄집어 내는 수 밖에.. 안그러면 다른걸 할 수가 없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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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불편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불편한 것이 사실이라는걸 알게 됐다.

누구와의 관계에서, 내 스스로에게도 불편한 것들은 어김없이 사실이었다.


내 경우에는 나를 향한 누군가의 뒷담화가 못견딜정도로 불편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난 그 불편함을 항상 남의 탓으로 돌렸다.

그것의 형식이 무례했기 때문이라고.

그건 비겁한 짓이기 때문이라고.

근데 뭐가 어찌됐든 간에 그건 사실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랬다.

참 오만하고 재수없기도 해라. 뭐 그리 티끌 한 점 없이 존귀하고 고매한 존재라고-
어줍잖다.

내가 불편했던 것은 내가 비뚤었었기 때문이다.

비뚤고 모자란 것을 기다 하니 꼴에 꼴사나운 존심이 상했던게지.

무언가를, 그게 무엇이든간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도 그렇고, 남도 그렇고,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은 보지 못했다.

나는 워낙이 모가 많이나고 삐뚤빼뚤 했기 때문에 그런게 무수히 많이 보였다.

그러다보니 '객관적'으로 사고할 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왜곡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불편한 진실'이었을 뿐-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오만가지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다.

잡다한 수다도 필요없고, 미사여구도 필요없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다시 한 번 조용히 되물을 수 밖에. "진짜 준비 됐냐?-"



하이고.. 사는 거 참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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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Pulmaya 머릿속 2011. 11. 1. 18:29

출국을 채 24시간도 남겨놓지 않고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밥을 먹고, 필요한 물건들을 좀 사고,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나와 울적한 마음을 치유하는 차원에서 완득이를 보고는 따뜻함을 느끼고, 폰 컨트리락 해제하는 걸 까먹고 있다가 부랴부랴 서비스센터에 와서 폰을 맡겼다.

얼핏보면 전혀 내일 출국할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지.
아 이건 또 뭔가 에이에스 센터에 앉아 여유롭게 글을 쓰는 모습이라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루는 24시간이고, 잠을 자는 시간을 일곱시간이라 잡고 나머지 17시간을 쓴다치자.

난 오늘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물건도 사고 에이에스센터도 들르고, 중간중간 페이스북도 하고, 지금은 글쓴답시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몸은 그렇게 움직이고, 또 머릿속은 이 생각 저 생각 오만생각을 다 한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그냥 너저분하게 정돈되지 않은 느낌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굴러가는 대로 보내보고 싶었다.


11월 첫날이자 2011년 내가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다.

참 특별할 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는 그런 하루다.


반 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냥 반 년.

돌아오면 여전히 아침에는 해가 뜨고 사람들은 하루 두번 혹은 세번 밥을 먹고 분주하게 출근을 하고 저녁이면 퇴근을 하고 밤이면 잠을 자겠지. 여 전 히-

하지만 아직 누구 뱃속에서 꼬물거리고 있을 조카도 태어나 있을 것이고,
후배들은 졸업을 했을 것이고,
교생때 반 학생들은 대학생이 되거나 재수라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고,
생각지도 못하던 사람이 죽거나 많이 아플지도 모르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커플이 탄생해 있을수도 있겠고,
내가 한국에 있던 없던 상관없이 예정대로 누군가는 결혼을 했을 것이고,
또 어떤 언니나 오빠는 여전히 짝 없이 외로운 상태로 있을지도 모르고,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

2004년 상반기 어학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을때
내가 사랑하던 학교 학관을 (누군가가?) 옮겨 놓았던 기억,
버스정류장과 노선이 죄다 바뀌어 서울 시내 한 가운데에서 촌년이 됐던 기억,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열 명이나 생겨있었던 기억,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루는 24시간이고, 잠자는 시간을 일곱시간 정도 빼면 17시간-

나한테 오늘은 그냥 너저분한 하루다. 아- 이 너저분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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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이 게으르고 굼뜨며, 필받을때만 움직이는 인간 Pulmaya의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릴레이 독후감 그 두번째 편입니다. 앞으로 한 번이 더 남았구요, 오늘 안쓰면 또 언제를 기약할지 몰라 일단 쓰고 봅니다. 답답해서 복장이 터질것 같으신 분들 몇분 되진 않으실테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십시오..-_->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2011.6 도서출판 이파르 / 백소영 엄기호 외 지음) 이젠 익숙해져버린 잉여의 모습들..

 책 한 권 읽는데 한도끝도 없는 Pulmaya의 릴레이 독후감 그 두 번째 편입니다.
이번 편은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제 2부 저항 하나 - 제도에 흠집내기 편입니다.

제 2부는 총 다섯 편의 글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의 패러디 문화, 잉여짓 또는 잠재적 혁명성?_백소영
너희가 병맛을 아느냐? 웰컴 투 더 <이말년 월드>_김수환
학생들과 무슨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백에서 증언으로의 전환_엄기호
김예슬 선언에 나타난 엑소시즘 지구화 시대의 시장 귀신 내몰기_구미정
청(소)년, 그리고 몰락의 정치 홍대 앞 두리반과 청(소)년 집합행동_김강기명

제가 생각하는 각각의 글은 2010년에서 2011년을 아우르는 20-30대 청년들의 문화 및 세대 규정의 단편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썰을 풀기에 앞서, 다섯 편의 글의 구성이 병렬 형식이라는 점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크게 부담감을 주지 않았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엄기호 선생의 글은 나머지 네 편의 글과 성격이 조금 다르지 않았는가 생각했다는 점을 밝히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2부의 소제목이 '저항'이라는 점과 그 부제목이 '제도에 흠집내기'라는 점을 바탕으로 하여 책을 조목조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독후감인데 책 내용은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패러디가 아닌 것이 어디있겠느냐만은...
제 2부의 앞부분의 두 편의 글은 패러디 문화에서 엿볼 수 있는 최근의 청(소)년 문화에 대해 조목조목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백소영 선생의 글은 '성균관 스캔들'을 중심으로 한 다종다양한 패러디 창작물을 다소 길게 소개하였고, 두 번째 김수환 선생의 글에서는 '이말년'작가의 작품이 모 포털사이트에 등재되는 과정을 살피며 청(소)년 문화를 조망하였습니다. 

 두 글에서 초점을 맞춘 지점은 바로 '패러디'라는 점인데요, (사족 : 이 책이 발표된 시기가 2011년 6월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 시기가 조금 더 늦어졌다면 아마도 '나는 꼼수다'까지 분석한 글도 들어갔을 듯 싶습니다.)

사실 패러디가 청(소)년 문화를 '점령'해 버린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도 아니고, 제 기억만 거슬러 올라가도 그 역사가 꽤 오래된 문화 양식이라는 점에서 그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의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초중고딩 시절을 아울러 무슨 장기자랑이다, 조별 발표다 하는 내용들의 대부분은 잘나가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본따 발표를 하고, 인기 대중가수의 노래와 춤을 그대로 재현해내던 나와 우리 세대의 놀이 문화를 떠올려 볼때, 사실 대부분의 지금의 2-30대 청(소)년은 패러디 혹은 카피에 굉장히 익숙한 세대지 않나 싶은거죠.

우리는 전혀 창조적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젖먹던 힘을 다해 만들어 놓은 것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조금 변형시켜 집단 내부의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각색하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싶어요.

대학에 들어왔다고 별로 달라질건 없었습니다. 여전히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문화속에 놀고, 먹고, 마시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기발하거나 창조적인 면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학교 다닐때는 나름 노래동아리도 하고, 이것저것 공연도 해보고,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그 노래에 맞는 몸짓도 만들어보고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아 난 정말 창조적 인간이 아닌가봐'하는 불편한 진실이었죠.

그래서 목마르게 찾아대던 것이 바로 '인디문화'였는데요, 정말 못됐게도 상상을 초월하는 자본력으로 탄생한 대중상업문화에 이미 깊게 몸과 마음을 푸욱 담궈버린 상태라 들어도 들어도 갈증만 느껴지는 서브-컬쳐 매니아가 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디밴드와 예술가들의 역량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썩어 문드러질대로 문드러진 저의 저급한 취향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정말 내 취향에 꼬옥 맞는 아티스트를 만나기 왜 그렇게 어려운 건지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지금의 2-30대는 슬프게도, 비극적이게도, 2011년 대한민국의 대중문화 생산자도 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입니다. 창조적이고 기발할 능력과 기회를 거세당한채 이 모진 대한민국 땅에서 적어도 20년을 살면서, 깔짝깔짝 패러디 정도 하는 데에 그 창조력을 쓰고 있다는 점이 슬픈 현실이라는 거죠.

졸업을 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어느 분야에서든 나의 권한을 가지고 무언가 역할을 하기엔 아직 어리고, 그렇다고 돈걱정, 미래걱정 하지 않으며 어디엔가 혼신을 다해 열정을 쏟아붓기엔 이미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버린 세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는 그 촘촘하게 거대해져버린 이 사회의 틈을 빠져나갈 수도 없게 되어버린 세대. 이 가엽고 측은한 우리 세대의 상징을 네 번째 글에서 구미정 선생은 '고시원, 편의점, 피시방'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모두가 김예슬이 되면 '소는 누가 키우나?'
개인적으로는 제 2부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글이 바로 네 번째 글 구미정 선생의 <김예슬 선언에 나타난 엑소시즘 지구화 시대의 시장 귀신 내몰기>였습니다.

2010년 3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던 김예슬양이 대자보 한 장 달랑 남겨놓고 학교에게 이별을 고했던 이른바 '김예슬 선언'. 1년 반이 지난 지금 늘 다른 역사적 사건사고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흘러가 버린 김예슬 선언은 2010년 2월 졸업생이었던 저에게도 어느 정도 심리적 동요를 안겨 주었습니다.

책 속의 누구 말마따나, '고려대 프리미엄'이 작용하여 그 당시에는 작지 않은 파장을 던졌던 김예슬양.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저와 같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예비 잉여들에게 쾌감보다는 허탈함을 주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대학 타이틀을 집어 던지고, 누군가는 아예 대한민국을 탈출하고, 누구는 어디서 시험공부에 매진하며, 이력서를 수십개 쓰고, 누구는 요행히도 안정적인 직장에 둥지를 틀어 ㅅㅂㅅㅂ 하며 야근을 하면서도 남들 취직 못하는데 취직한 게 어디냐며 위안을 삼고...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던지간에, 지금의 우리 세대는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는 사실. 너무 과한가요? 하지만 전 이 말에 동의했습니다.
 "욕망은 언제나 타자의 욕망이다"-자크 라캉(책 165쪽에서 재인용)

나의 꿈은 정말 올곧이 나의 꿈인걸까?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되려면?
이건 철저히 저의 생각입니다. 나이 먹어서도 정신 똑바로 박혀 있지 않으면 꼰대, 존경할만하면 어른.
저는 나이 서른을 먹도록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음, 나는 멋진 어른이야.'라고 생각이 들었던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철이 없어서 그런걸까요? 하지만 제 친구들과의 이야기에서도 종종 등장하시는 '어른'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는 될 수 없는 존재인것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어른'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인 다섯번째 글 김강기명 선생의 <청(소)년, 그리고 몰락의 정치 홍대 두리반과 청(소)년의 집합행동>편에는 어른도, 꼰대도 아닌 제 3의 인간형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자유의지로 행동합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도 있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반말을 합니다.
그들은 서로 맞담배를 태웁니다.
그들의 관계는 대한민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평등한 관계입니다.

그들은 두리반 뿐만아니라 기륭전자 파업현장, 용산 철거민 투쟁의 현장에도 결합합니다.
그들은 '반상회'라는 제도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그 결과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들은 홍대 앞 두리반 칼국수집의 이전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으며, 두리반 문화라는 새로운 형식의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홍대 앞에서 조금은 변두리인 동교동 두리반은 지난 2010년 철거 투쟁과 인디밴드 문화가 적절히 섞여 이루어진 독특한 문화 현상의 아이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1년 1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추모공연에 스무개가 넘는 공간과 100개가 넘는 인디밴드들이 함께 했던 것과 더불어 2010년에서 2011년은 인디문화에서 중요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문화는 여전히 대중문화가 아닌 인디문화로 남아 있으며, 그 저변이 확대되어 가는데에 경제적 공간적 어려움이 존재하며, 한때 홍대를 들끓게 했던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 밤의 클럽데이도 막을 내리고, 이런 저런 사실들이 '아 대한민국에서 예술 해먹기는 정말 어렵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해줍니다.

이야기가 조금 돌고 도는데요, 짤막하게 정리한번 하고 가겠습니다.
인간을 동물에서 벗어나게 했던 것은 채집, 수렵으로 비롯해서 농경, 목축 그리고 생산으로 이어진 '노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바로 '문화와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답게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지 못하며 노동에 생의 상당부분을 점령당하며, 예술을 하면 제대로된 어른 취급을 잘 안해주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요, 맨 마지막 글인 두리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이 글이 제 2부 '저항' 그것도 '제도에 흠집내기'에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저 씁쓸할 따름이라는 거죠.

인간으로 태어나서 먹고 살기에만도 빠듯한 대한민국의 현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굶어 죽을 각오쯤은 최우선으로 해야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철부지로 욕을 들어먹어야 하는 현실. 어른되기 참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고백하다 증언하기 쉽지 않겠지만...
배치상으로는 세번째 글인 엄기호 선생의 <학생들과 무슨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백에서 증언으로의 전환>을 맨 마지막에 거론하는 것은 철저히 저 개인의 기호와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

엄기호 선생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와 덕성여대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는데요, 철저히 제 개인의 기호에 따라 선생이 말했던 글쓰기가 사회적 행위라는 것에 위안을 받았답니다. 지금 이렇게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잉여짓을 하면서, 손발 후덜덜 떨리게 자존감이 오그라 들고 있을 저를 위해 마치 위로를 건내기라도 하는 듯, '글쓰기는 사회적인 행위이다'라고 근엄한 목소리가 어디로부터 들려오는 것만 같거든요.

우리는 아주 땅꼬마 시절부터 그림일기, 그냥 일기로부터 시작해 사적 활동으로서의 글쓰기만을 경험해온 탓에, 막상 대입을 앞두고 논술 시험을 준비할라 치면 정말 그야말로 애간장이 다 녹아도 제대로 된 글 한번 못쓰고 좌절하다가, 대학에 입학해서는 별로 흥미도 없고 쓰고 싶지도 않은 레포트만 주구장창 써내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하루종일 보고서를 쓰다 하루를 마감하곤 하지요.

이렇게 소통을 하기 위한 글쓰기가 아닌 기능적 글쓰기에 치중해온 까닭에, 수많은 작가지망생이 있음에도 잘팔리는 책은 처세술과 성공에 관한 책 뿐이고(아니, 기능적 글쓰기와 처세술 관련 책이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신다면, 음.. 너무 비약이었긴 하지만 기능적 글쓰기라 함은 그냥 문화예술적 활동이 아닌 노동의 형식이라고 변명하고 말겠습니다. 흠), 정작 그것이 자신의 처지와도 맞지 않거니와,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지도 못하는데!! 갑자기 너무 흥분했지만, 흠흠 어쨌든 다시 이성적으로 돌아와서 하고 싶은 얘기를 마저 하자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글을 만나기도 매우 힘들뿐만아니라, 쓰기도 참 어려운 처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뭐 작가만 글을 써야 하는 법이 있나요? 여기서 아르헨티나 사람들 이야기 잠깐 하고 넘어갈게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직업이 두개래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 직업을 두가지 씩 이야기 한다고 해요.

"저는 음악을 하는 의사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웨이터입니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문화 예술활동과 노동활동을 분리시키지 않고 병행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려면 물론 법적으로 노동시간도 많이 줄어야 할거고, 야근도 안해야 할거고, 동네나 마을 근처에 문화 예술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줄 센터같은것도 필요하겠지요. 어쨌든, 요지는 인간이 동물같지 않으려면 노동을 해야겠지만, 인간다우려면 문화예술 활동이 꼬옥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인간이 노동을 더 많이 하도록 하기위해 꽤 많은 곳에 마약과 아편이 톡톡, 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성공'이라는 놈인데요.

사회 전반적으로, 기업 내부에서도 강도 높은 노동의 결실로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온갖 곳에 주렁주렁 달아놓은 듯 합니다.

아, 여기서 노동이라 함은, 생산직 노동만이 아니라 사무직, 서비스직을 포함하여, 노동자가 되한 예비 과정으로서의 각종 시험공부까지도 포함된 지극히 관념적인 개념임을 말씀드립니다.

이 '성공'이라는 놈은 개별 인간의 '욕심'과 결부되어 정말 열심히 일하는 인간을 곳곳에 만들어 놓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 '성공'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가던 인간들이 자칫 잘못하여 실패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개별 인간의 무능함을 탓하고 말죠. 입시에 실패한 수험생의 자살도, 취직을 못한 청년의 비관자살도, 사업 실패로 인한 일가족의 자살도.. 실패는 철저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지는 사회. 무섭습니다.

솔직히 저는 노동에 좀 질렸습니다. 천성이 놀기 좋아하는 인간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워커홀릭도 좀 있는 편이었는데요, 물론 지금은 백수지만 언젠가 다시 뼈빠지게 노동을 해야하겠지만요. 그래도, 모든 국민이 하루에 대여섯시간만 일하고 실업자를 줄이면 안되는 걸까요? 삐까뻔쩍한 고급차 안타더라도 조금 덜 일하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고, 좀 더 월급받으면 대한민국이 망하는 겁니까? 음... 늘 그렇듯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습니다.

-서로가 '공명'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엄기호 선생의 글에서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바로 '공명'이라는 말입니다.

'공명이란 진동수가 같은 물체가 한쪽이 울리면 다른 쪽이 같이 울리는 현상을 말한다.'(책 142쪽)
엄기호 선생은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과의 공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서로 사이에 '공명'은 필요할 것 같았어요.

누군가에게 다가서기 위해, 때로는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이 울면 함께 울어주고, 웃을때 같이 웃고. 흠... 말은 쉬운데 만만치 않네요 ^^


자세한 내용은 책을 꼭 읽어보시고요, 저는 또 부지런히, 열심히, 농땡이 치지 않고 책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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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m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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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지교를 꿈꾸며 - 유안진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라도 좋고 남성이라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하게 맞장구 쳐주고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나라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길 자산이 되었을걸.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는 않고
내친구도 성인같아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눈 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니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일을 하되, 미친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 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이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2011. 9. 28 원주 한살림 매장에서 발견한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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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m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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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트는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독후감으로 천성이 굼뜨고 필받을때만 움직이는 제 개인의 특성과 책의 내용이 크게 3부로 나누어 지는 것을 감안하여 릴레이로 올리는 독후감 제 1편입니다. 되도록이면 민첩하게 읽고, 머리 굴리고, 글 쓰고 하겠습니다;; 다소 황당하시더라도 그냥 지켜봐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2011.6 도서출판 이파르 / 백소영 엄기호 외 지음), 표지하고는 참...

목이 디스크 걸려라 하고 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그야말로 청명한 가을날, 여느 때 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밤에는 자고 낮에는 깨어 있어야 집에서 쫒겨나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을 가진 백수 Pulmaya의 하드코어한 백수짓은 아침 먹고 내내 뒹굴거리다 드디어 책 한권을 손에 잡음으로써 잠시 소강상태를 보입니다.

누구라도 들으면 알만한 모 인터넷 언론 편집기자로 재직 중인 살이 퉁퉁하게 오른 선배가 점심을 사주며 이 책을 손에 쥐어준 지도 어언 두 달, 지금의 나의 처지와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이 책을 받고서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현실과 맞서는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하고 스스로 등을 토닥입니다.
 '너 잉여야.. 잉여 맞잖아.. 놀고 먹으려 들잖아.. 이 잉여인간아..'

그래, 나는 잉여다. 뭐 나만 잉여냐. 흥.

각설하고 이 포스트의 정체성이 릴레이 독후감인 만큼, 본분에 충실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는게 원래 전쟁이지 뭐, 전쟁터가 따로 있남?
오늘은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제 1부 '고통'에 대한 독후감입니다.

본권 13쪽에서 68쪽까지의 짤막한 분량의 내용으로 크게 두 편,
'잠재성을 잉여라 부르는 세상' (백소영)
'이것은 우리 잘못이 아냐!' (엄기호) 님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이 책을 읽게 되실 예비 독자분들을 위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비생산적인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개인적인 소회를 밝혀 본다면, 저의 30년 안팎의 짧은 인생의 약 15년을 훑을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초등학생에게 '쓰레기'라고 했던 선생, 당신은 누구인가?
백소영씨의 아이가 갓 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우리의 엽기발랄하신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쓰레기'라고 했다는 이야기로 글은 시작됩니다. 펑펑 우는 아이와 손발이 파르르 떨리는 엄마 백소영, 보지 않고도 상상만으로 그 충격적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거쳤을테고, 지금 그 선생님은 여전히 교편을 잡고 계실까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잉여'의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바로 내일, 나아가서는 1년, 길게보면 평생이 좌우되기도 하지요. 현실이 전쟁같은 것은 그것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불문율이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아장아장 걷고, 어린이집에 발을 들이며, 사회에 속하는 그 순간부터 전쟁은 시작됩니다.

#1 초등학생 과외이야기.
대학 재학시절 정말 '굶어죽지' 않기 위해 오만가지 잡다한 알바를 해제끼던 그 때는 '과외'만큼 달콤한 유혹이 없었습니다. 시급으로 치면 왠만한 정규직 신입사원의 초봉보다도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그 고소득 일자리는 대학생의 삶에 안정감을 주기도 했지만 거대한 '사교육'시장의 일원으로 전락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동시에 안겨 주었죠.

과외, 기간으로 따지자면 한 7년 넘게 한거 같아요. 처음에는 '돈'이 되는 고 3 과외를 하다가,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는 생각에 조금 수위를 낮춰 중학생 과외를 하다가, 수업 준비하는데 드는 시간도 아까워 조금 덜 받더라도 쉽게 가자는 생각에 초등학생 과외까지 마수를 뻗치게 됩니다. 이미 과외 중계업체의 VIP 회원이 되어버린 저는 들어오는 과외를 골라가며 하고, 수수료도 할인받는 인정받는 선생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하 초딩) 과외의 이점은, 수업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아이들의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수업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다는 점, 성적 결과물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제가 과외를 했던 몇몇 초딩 중 한 아이의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학교를 다니고,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하는 그 아이는 눈이 말똥말똥 한 것이 참으로 귀여웠습니다.
어머니의 요청사항은 '아이가 학원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니 학원 진도를 좀 뒤쫒아가게 지도편달 부탁한다'였습니다. 아, 이런 씁쓸하고도 눈물나는 이야기... 학원 진도를 못 따라가서 과외를 하다니!!!!

이 아이는 학교 공부외에도 학원을 두 개 (영어 전문학원과 교과목 보습학원), 체력 단련을 위한 검도장, 학습지 세 개(한자와 영어, 수학)에 제가 하는 과외까지.... 정말 노는 틈이 없는 우리의 불쌍한 초딩이었습니다..

저는 매주 2번, 한 번에 두 시간 이 아이와 놀아주면서, 가끔은 학원 숙제를 해주고, 가끔은 학습지를 풀어주고, 가끔은 전날 과음으로 졸다 애한테 들키고... 그렇게 아이의 빡빡한 하루 일과에서 마법사처럼 뭔가를 쓱싹쓱싹 해주는 과외 선생으로 한 4개월 정도 지냈습니다. 그것도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게 될 무렵 중등과외는 하지 않는다며 공손하게 머리 숙이고 나왔는데, 따지고 보면 고등학생 그 아이 누나 시험기간 과외까지 해줬으니, 상당히 오랜 기간 그 가정에 기생하며 목숨을 부지한 그야말로 잉여인간이었습니다.(어머님 굶어죽지 않게 보살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게 벌써 3-4년 정도 전의 일이니 그 아이도 아마 고등학생이 되었을 거고, 그때보다 더 빡빡한 하루 일과를 보내고 있겠지요.

아이고, 과외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요지는... 저의 잉여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 내지는 도움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구요, 그 희생과 도움은 불행히도 현대 대한민국의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가정이었다는것, 저의 어린 시절도 그랬지만 만능엔터테이너보다 훨씬 빡빡한 하루를 보내는 초딩과 유딩이 대한민국에 넘쳐나는 것이 매우 슬프다는 것, 과연 대한민국은 미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 뭐 여러저러 잡소리가 하고 싶었습니다.

이 늪과 같은 현실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다음 2, 3부로 넘어가야 나올까요?.
어쨌든 오늘은 우리의 현실인 '고통' 부분만을 읽었을 뿐입니다.


#2 이불공주 이야기
책 30쪽에 등장하는 이불공주 이야기 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꼭 읽어 보시고요, 21세기 학교에 사는 이불공주 이야기인데, 학교에까지 이불을 싸들고 와 잠을 자는 공주랍니다.

사실 20세기 후반의 학교에도 이와 닮은 공주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로 '쿠션공주'이야기인데요, 실제로 제가 그랬습니다.
중 1때부터 시작된 수마(睡魔)와의 싸움에서 일찌감치 패배한 저는 등교하자 마자 잠들어서, 수업시간에도 자고, 쉬는 시간에도 자고, 수업시간에 자다 걸려서 복도로 쫒겨나서 벌 서다가도 자고, 어떤 날은 1교시부터 잠들어 눈 뜨니 6교시가 끝나 있었던 날도 있었죠. 아, 공부는 언제 했냐구요? 당연히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서 했습니다. 학원에서 미리 배우고 학교에 가는데 학교가 재미있을리가 있나요.
어쨌든 정말 열심히 잤고, 급기야는 고 3때 생일선물로 반 친구들이 개뼈다귀 모양의 샛노란 쿠션을 선물해 주어 덕분에 고 3때는 아주 편하게 잤습니다. 4월에 선물받은 이 쿠션이 반 친구들의 품을 돌고 돌아 여름방학 무렵에는 시커먼 회색 쿠션이 되어있어 집에 빨려고 가져왔다가 엄마가 기겁을 하고 세탁기에 넣을 수 없다해서 손빨래를 했던 그 사랑스러운 쿠션... 졸업과 동시에 더 이상 회복 불능으로 눈물을 머금고 버렸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노란쿠션의 오마쥬는 저의 6년간의 중고딩 시절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이렇게 긴 쿠션 얘기는 또 뭐냐구요?

그 시절엔 그랬습니다. 선행학습으로 비롯된 학교공부에 대한 의욕상실, 맹목적인 획일화된 교육, 책에도 나오지만 반항보다 더 무서운 '무기력'... 이 거대한 알고리즘의 시작은 어디인가요? 학교교육의 부실인가요? 학교교육을 압도하는 사교육인가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무기력의 시작은 롤모델의 부재
저는 학창시절 되고 싶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 학년 초 써내는 장래희망에는 늘 부모님의 바램대로 '아나운서, 교수, 공무원'을 돌아가며 한 번 씩 써서 냈더랬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억울합니다. 누구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고, 누구는 가수가 되고 싶은데, 나는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흥미로운 것도 없어서 그렇게 긴 시간을 그림자처럼 보냈던 것일까?.. 늘 틀에 박힌 듯이 똑같은 학교-학원-집 사이클 속에서 되고 싶었던 것도, 평생을 걸고 싶었던 것도 없었던 나의 10대.. 지금 생각해보면 여전히 만나면 그때처럼 변함없는 친구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긴 터널을 지나 왔을까 싶을 따름입니다.

이제는 다행히도 대안학교도 생기고, 청소년들의 여러 다양한 활동들이 많이 열려 있고, 청소년 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서 조금 더 나아졌다는 생각도 들지만, 여전히 학교-학원-집-과외의 챗바퀴속에서 종종걸음질 하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2011년 대한민국은 과연 행복합니까?..


-이것은 우리 잘못이 아냐! 그래,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
1부의 두번째 이야기인 엄기호씨의 이야기에는 세 명의 젊은이가 등장합니다.
'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형석,
'집에서 나와 세상과 단절된' 한 학생,
'어른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민철

불과 이 세 명의 이야기로 2011년 대한민국의 젊은이 90% 이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게 참으로도 슬프지만, 저는 이 세명의 젊은이를 통해 저의 20대를 돌아보았습니다.

#1 굶어죽지 않기 위해 가난뱅이가 된 Pulmaya
대학 입학 후 중국 어학연수를 간 동안 집안 사정이 급격하게 나빠져버렸습니다.
군대에 간 남동생, 엄마도 아빠도, 나도 서로가 함께 살지 못한 채 정말 목숨을 연명해야 했었죠..

학자금대출로 쳐발라 가며 학교를 다니면서도 조금더 여유를 가져보겠다고 학교에서 주는 복지장학금(공부 잘해서 주는 거 말고, 가정 형편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는 장학금..)좀 받아보겠다고, 우리 집에 돈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건강보험료 납부 증명에, 내지도 않은 재산세 납부 증명에, 쓰는 사람도 피눈물을 펑펑 흘리고 읽는 사람도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자기 소개서에, 그렇게 그렇게 '나는 가난뱅이다'를 만천하에 증명하며 저 들판에 헉헉거리는 들고양이만도 못한 삶을 연명하면서, 왜 인간으로 태어나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한탄하고, 낳아준 부모마저도 원망했던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이렇게 덤덤하게 얘기하지만 혼자 벌어 학교도 다니고, 집도 얻어 살고, 목구멍에 풀칠도 하기 위해 죽도록 발버둥쳤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하루에 알바를 세탕뛰며 목구멍에 핏물 올라오도록 발버둥 쳤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학자금대출 1,500만원의 압박은 호흡을 가쁘게 합니다.

고교 졸업자의 80%가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원생 3만인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사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저보다 조금더 성적이 좋고 스펙이 좋아 대기업에 입사한 선배와 친구들도 나가 떨어지지 않게 끊임없이 발버둥쳐야하고, 대기업에 입사해도 끝까지 남는 사람은 다섯명 중 한명이라는 비공식 통계, 2011년 대한민국. 누구에게나 사는 건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언제쯤 끝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세 젊은이 중 한명인 민철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외환위기로 파탄난 가정, 스스로를 자책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님에게 당당히 얘기합니다.
'아니에요, 우리들 중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어요.'
맞아요. 잘못한거 없어요.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마세요.

나는 언제쯤 우리 엄마아빠에게 손을 내밀며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하고 싶었던 건 내 얘기일지 몰라서

책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1부를 보고나서 구구절절 하고 싶었던 것은 책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고통스러웠고, 누군가는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니까요.

앞으로 남은 2부와 3부는 '고통'을 넘어 '저항'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되도록이면 빨리 읽고, 생각하고, 쓰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2011. 9.15 Pulmaya 직찍 사진 <봐라, 태양이 구름에 가리니 더욱 빛나지 않더냐?> 삶도 그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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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인은 자신을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라 했지만, 나는 아무리 바람을 맞아도 상처받기만 했다.

내 주변엔 유난히도 착하고 순박한 사람이 많았다.

나는 그저 내가 인복을 타고 났나보다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내 성격이 하도 지랄맞아 왠만한 인품으로는 나를 품어 안지 못하고 달아나 버린 탓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잘나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줄 알고 온갖 요란을 떨며 깝치고 까불었다.

한밤중에 자다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 생각해보니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 금쪽같은 사람들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나를 키운건 하늘같고 땅같은 사람들이었고 덕분에 아직도 여전히 조금씩 자라고 있다.

두려운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주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내 자신이다.
두 눈알을 새까맣게 뜨고 앉아 사람구실 제대로 못하고 밥만 축내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요물이다..

자다 일어나 골때리는 짓은 혼자 다한다. 기가 막혀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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