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013년으로 넘어 왔다. 서른 둘이 되었다. 정말 기다려왔던 서른 둘.

스물아홉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하는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마구 꼬여서 혼자서 아홉수 삼재를 치룬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마 미치거나 돌연사했을지도 모르는 그 시간들. 서른 둘이라고 하니 얼마나 홀가분하고 날아갈듯 한지. 시원섭섭하지 않고 그냥 속이 다 시원하다. 나이 먹는다는 두려움도 없다. 서른하나와 서른 둘은 크게 구별짓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한가한 겨울일 것이 확실한 2012-13 겨울 시즌. 지난 12월과 다름없이 네시 반 퇴근하면 사람들을 만나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서 더욱 너그럽고 여유로워지는 시간들이었다.

 

작년 연말에 찾아왔던 대선 멘붕에서도 점점 벗어나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고, 앞으로 5년, 그 후 다시 5년, 10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게 되면서 조금 더 계획적, 장기전망적 인간형으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한 달 넘게 미루어 두었던 노트북 어댑터를 구매하여서 이번 월기는 침대에 배깔고 누워 노트북으로 쓰고 있다. 하기로 결정한 것들은 미루지 말고 그때 그때 해치우자.

 

2013년 1월은 2012년 13월과 같은 느낌이라 이번 주말 설이 지나야 비로소 진짜 한 살 더 먹었고, 해가 바뀌었다는 실감이 날 것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새해의 결심과 포부를 밝혀 본다.

 

11월 22일 원서를 쓰고 12월 7일 합격자 발표하여 1월 3일 학과 시무식 참석, 1월 14일 가등록, 2월 2-3일 오리엔테이션, 2월 6일 등록. 의 절차를 거쳐 드디어 석사과정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2년 반, 5학기의 기간동안 웬만하면 중간에 쉬지 않고 마칠 계획이다. 학부 입학 10년 만에 다시 신입생이 된 감회라면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정말 눈물 질질 짜며 알바 구하고 대출받고 하면서 겨우겨우 졸업한지 3년 만에 다시 학업이라니. 학부때와 조건이 달라진 것은 거의 없고 빌려서 벌면서 갚으면서 다니는 것에 조금 익숙해지고 담담해졌다고 해야할까. 익숙해지니까 크게 괴롭고 힘들지 않다. 뭐 집에서 못받쳐주고 하고 싶은거 하고 살려면 별 도리 없다 생각하니 스트레스 받지도 않는다. 적당히 취직해서 적당히 벌고 필요 이상으로 비싼 상품을 소비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어디 가서 술먹고 춤추고 그러면서 적당히 풀고 뭐 그런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고 그렇게 살려는 니즈나 디자이어도 없으니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란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이야기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되묻고 싶다, '그래서 진짜 니가 하고 싶은게 뭔데?' 난 지난 10년 동안 그리고 최근 2년 동안 정말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를 찾는데 내 시간을 들이고 어떤 날은 밤에 잠도 못자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낙담하고 좌절하면서 이제 겨우 찾았으니 앞으로 이 길로 주욱 밀고 가겠다. 죽을 것처럼 병적으로 하지는 않고 클로드 모네처럼 열심히는 해서 장수하여 이 분야의 원로도 되고 밥벌이도 하고 남도 먹여살리는 그런 사람이 되야겠다. 앞으로 주어진 하루 24시간 중에 잠자는 시간도 귀히 여겨 잠도 잘자고 먹는 것도 잘 먹고 1분 1초도 무의미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퇴근하고 수업듣고 늦게 집에 오고 그런 일들이 처음에는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한학기 잘 적응해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그 옛날 옛적 미친듯이 몰아쳐서 일하던 때에 비하면 얼마나 규칙적인 일상인가. 더군다나 방학도 있고. 보람있게 즐겁게 살고 싶다. 그래서 논문 쓰고 학위 받을때 가장 므흣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 다음 계획은 그때가서 밝히면 된다. 앞으로 수강신청 등의 자잘한 일정이 남아 있지만 크게 고비로 우려되는 지점은 없고 일정에 발맞추어 가면 된다. 중심 잘 잡고 잘해보자.

 

서른 하나, 서른 둘. 사회적으로도 뭔가 중견의 역할을 하기엔 아직 좀 모자르다. 30대 초 중반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관계를 만들면서 마흔줄에 접어 들었을때에는 그 누구보다 잘나가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계산으로는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지도를 들고 방향을 잡으면서 하는 여행이 네비켜놓고 아가씨 목소리 따라 가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네비는 목적지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가며 어디서 꺾을지 말지 그냥 주어진대로 가는거지만 지도를 펴놓고 가면 샛길이나 이런데를 스스로 판단해 가면서 길찾는 즐거움과 성취감이 있으니까. 그리고 정 필요하면 길을 새로 닦으면 된다. 요즘의 나는 그 어느때보다 자신감도 넘치고 즐겁다. 근심 걱정이 영 없지는 않으나 내려놓을 줄도 알게 되었다. 스물이 넘어서 찾아왔던 사춘기가 남들보다 더 어른이 되었던 것 같다. 10대에 사춘기가 온 친구들은 대부분이 중고등시절의 성실성으로 그 다음 생애의 방향이 정해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입지가 좁아졌던 것 같다. 그래도 대학이라는 문턱을 넘은 후 찾아온 사춘기는 스물에서 서른을 넘어오는 시기에 더욱 깊은 고민을 하게 하고 향후 30에서 50년의 방향을 잡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20대의 사춘기가 좋다. 30대나 40대 혹은 그 이후에 찾아오는 사춘기는 안정을 도모하는 시기의 균형을 깨버리는 것 같다. 요즘은 자꾸 늙은이처럼 사람 타고난 그릇만큼 살게 된다는 생각이 드는데, 확실히 나의 그릇은 엄청 작았던 것 같고, 요즈음은 새로 그릇을 하나 빚기 시작한 것 같아서 설렌다. 잘 살아볼란다.

 

어쩌다 보니 1월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한 것이 없는데, 사무실에서 중순에 강원도 화천 그 추운 동네로 워크샵 갔다 온 것 외에 특이사항은 없으므로 머릿 속을 꾸물거리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으로- 2월 말에 북경 낙영이네 잠시 다녀 오는 것으로 결정했으니, 다음 월기에는 아마도 그 이야기를 많이 쓸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가 하나같이 키 많이 컸다는 소리다. 지난 1년간 부단히 스트레칭하면서 노력했고, 자세도 바꾸느라 공을 들였다. 가슴펴고 등펴고 어깨펴고 허리펴고. 그러다 보니 인생도 피는 것 같다.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돈 많이 벌어서 그 돈으로 보험들고 병걸리고 보험타서 병원다니고 그게 제일 불쌍한 일 같다. 하고싶은 걸 찾아서 정말 다행이고 그것들을 해 나아가는데 배포도 조금 더 두둑해진 것 같아 너무 다행이다. 스스로가 대견하고 기특하고 지난 시기 함께해준 사람들, 도와준 사람들에게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 5년, 10년 뒤에는 물심양면으로 보은하며 살고 싶다.

 

누구나 자기의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그것을 인지하는 사람만이 그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난 그것만 믿기로 했다. 내 세상의 주인은 나. 각자 자기 세상의 주인으로 살 때 정말 행복한 세상이 될 것 같다. 나도 살고 남도 돕는 새로운 길을 떠나보자.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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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013년이 되었다. 2 0 1 3, 서른둘 두근두근. 그래도 설 지나고 개나리피는 삼월은 되어야 비로소 만물이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아직은 살짝 2012년 13월 같은 느낌이랄까-

지난달 월기를 쓰면서 노트북 어댑터를 사기로 했는데 게으름피우다 아직까지 못샀다. 결국 이번달 월기는 폰으로 쓰게 되었다. 돌아오는 주에는 꼭 주문해야지.

12월 둘째주 셋째주에는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만났다. 마치 다시는 못만날 것처럼 약속을 잡고 얼굴을 보고 밥먹고 차마시고 그러면서 보냈다. 또 한편으로는 십오년 만에 연말 카드를 만들어서 직접 주거나 우편으로 부쳤다. 답장은 딱 한 통, 정아씨로부터 받았다. 답장을 받고 못받고와는 무관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담아 한 자 한 자 손글씨를 써내려가며 지난 인연들을 반추했다. 중학교때부터 20년을 바라보는 인연도 있고 짧게는 이제 삼년차를 바라보는 인연도 있었다. 하나같이 소중한 인연들이다. 이제 이렇게 만나는 사람들은 평생을 바라보고 함께할 인연이 될 것이다. 평생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책임감이 더해진다. 어찌보면 얄팍한 나의 인생에 의미가 되어주는 사람들- 남는 건 역시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12월 첫째주에는 대학원에 합격했다. 지난달 월기를 쓸 때 합격 발표를 기다리면서 다시 한 번 굳게 마음먹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대선을 기점으로 크게 흔들린 것도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이다.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공부를 하는 도중에도, 공부를 마무리하는 시점에도 변수는 늘 있을 것이었다. 모르고 시작한게 아니었는데. 작은 일이건 심각한 일이건 부화뇌동 하지 않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번 달에도 의연해지는 일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이를 좀 먹으면 덜 산만하고 좀 더 차분해질 줄 알았는데 그런건 나이와 무관한 일인가보다. 남들보다 쉽지 않아도 별 수 없다. 노력하는 수 밖에-

겨울은 김장김치처럼 무르익어 가고 있다. 엄마는 경미한 교통사고가 나서 2주 정도 입원해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퇴원을 했다. 별 일 없이 넘어간 연말, 또 별 일 없이 넘어온 연시. 작년 새해는 남의 나라에서 시작했고 그 전 해에는 아마 북한산 해돋이를 보러 갔었지. 크리스마스도 새해 첫날도 징검다리 휴일이어서 모두 전날 오전 근무만하고 일찍 퇴근해서 푹 잘 쉬었다. 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은미와 상민이의 아들을 보러 다녀왔다. 대선 결과때문에 무겁게 가라 앉아 있던 마음을 바로 세워 줄 희망이 필요했다. 신생아를 만나는 일은 정말 오랜만이라 두근거리고 설렜다. 때마침 사진을 찍으려는데 아기님이 식사를 시작하려다 젖병을 빼는 바람에 울음을 터뜨려 버려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잘 크리라 믿는다. 너무 감사하다.

어제는 등록도 안했는데 대학원 과모임이 있어서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낯선 사람들. 그래도 앞으로 계속 관계를 맺어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말도 행동도 좀 조심스러웠지만 푼수 오지랖기질은 어쩔수가 없다. 영 나쁜 인상은 주지 않은 것 같았다. 나이도 어중간하고 관련업계 종사자도 아니라서 크게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관계는 내가 만들어 가는거니까. 참 오랜만에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정성들여 열심히 해야겠다. 어제부터 전공공부 예습도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는 책읽는 속도가 안나서 좀 어렵다. 집중력을 다시 끌어 올려야 한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서른둘이 시작되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중심을 잘 지키며 하나 둘 준비해 나아가야겠다. 동지도 지나고 새해도 시작되어 벌써 겨울이 훌쩍 지나버린 느낌이지만 몇번 더 찾아올 한파와 담담하게 대면하면서 수선떨지 않고 할 일을 해야 하겠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크게 놀라울 일도 없고 새로울 일도 없어지는 것이 좀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지만- 맨날 예능에 서스펜스로만 살면 골병들겠지. 당분간은 다큐로 살자. 2013. 이천십삼. 익숙해지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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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슬쩍 11월에서 12월로 넘어왔다. 어제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는데 아직도 가을이 끝나지 않은 느낌이다. 눈내리는 가을. 11월은 초입부터 정신이 좀 없었다. 지난 월기를 어수선하게 써내린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이번 달은 좀 차분하게, 간결하게, 정갈하게, 단조롭게 쓰고 싶다.

 

컴퓨터가 맛이 갔다. 어댑터 연결 부위가 엉망인 것을 계속 방치하고 있었던 탓이다. 미루지 말고 새로 하나 구입을 해야겠다. 아직은 쓸만한데. 사람도 기계도 그 무엇도 '관리'를 잘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신경써야겠다.

 

11월의 토픽은 단연 건반 구입. 빼빼로데이를 맞이하야 꼬꼬마 49건반을 하나 장만했다. 한 열흘정도 열심히 쳤는데 이런 저런 일정으로 한동안 손을 못댔다. 12월에는 틈틈이 두들겨 주어야지.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자기를 아껴주는지는 귀신같이 알아챈다. 신기한 일이다. 누가 보고 안보고에 구애받지 않고 제대로 살아야 할 이유인 것이다.

 

11월 막판에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구체적 내용은 다음 월기에 적기로 한다. 2년을 고민하고 반년을 망설이던 일이었는데 반나절 고민하고 결정한 후 집행했다. 결정적 순간은 찰나니까. 아직은 무엇을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사실 엄두가 나지 않고 좀 두렵지만 그래도 결정한거니까 간다. 본격적인 시작은 아직 여유가 있으니 충분히 쉬고 놀란다.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묵은 인연을 정리하고 되살리고 그런 시간들이었다. 어떤 이는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어 주었고 어떤 이는 시큰둥했다. 그래도 다 소중한 인연이다. 몇 년 만에 만나 연락하고 의견을 묻고 결정에 도움을 받는 일도 있었고, 설마 나를 기억할까 싶어 먼저 연락하지 않았는데 잊지않고 기억해 준 이도 있었다. 이것도 잘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물망처럼 얽히고 섥힌 인연들이 언제 어떻게 다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까. 말 한마디 글 한 줄에도 신중하고 조신해야 할 것이다.

 

얼굴 교정기는 한동안 끼지 못했다. 피부관리를 좀 마무리 해놓고 다시 할 것이다. 피부는 좀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믿는다. 아직까지는 퇴근하고 걸어다닌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 이것도 버거워지겠지. 할 수 있을 때 잘 하자.

 

어느 순간부터 더 조심스러워지고 신중해진 대신에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서서히 찾고 있다. 뒤만 돌아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 앞을 봐야할 시점이 점점 다가온다. 앞을 보기 시작하면 뒤돌아볼 틈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바쁘지 않게 차분히 갈 것이다. 이제 지난 10년을 통해 얻은 교훈들을 앞으로 10년에 실천 적용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더위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지만 추위는 사람을 한없이 위축시킨다. 어느 것이 더 나쁘다 할 수 없겠지만 그 성질을 잘 알고 의연하게 대처해야겠다. 의연함. 요즘 내가 훈련해야 할 덕목이다.

 

지나고 보니 이맘때 한국에 있는게 3년 만이다. 재작년에는 파리에 있었고 작년에는 네팔에 있었으니 3년 만에 맞는 한국의 12월 첫째주가 따뜻할 리 없다. 그 당시 낯선 곳이 주는 의외의 안정감에 오히려 잠도 잘 자고 잘 먹었던 것 같다. 구름 위의 햇살과 편안함을 되새김질 하며 차분해지자. 앞으로 당분간은 해외에 나갈 일이 없을테니 기억을 잘 간직하는 수 밖에 없다.

 

머리는 당분간 2년 정도 기를 것이다. 30대 중반이 되면 흰머리가 생길테니 이 시기를 지나면 머리를 못기를 것 같다. 인내심을 가지고 머리를 길러보자.

 

향후 2년의 운명이 곧 결정된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자. 열심히도 살고 잘 살자.

잘 할거라 믿자.

 

하고 싶은 말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웬만큼 했으니 이제 말수도 줄여보자. 출력을 줄이고 입력을 풍부하게 하면서 조금 더 성숙해지자. 세상 만물 예열은 필요하다. 잘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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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 놓고 있는 사이에 11월이 시작해버렸다. 목요일에 새로운 한 달을 시작해버려서 어영부영 그냥 넘어갈 뻔 했다. 이걸 첫째 주로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얼떨결에 금요일로 넘어왔고 다음주 목요일쯤 쓰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97% 정도였는데... 뭔가 어수선하고 복잡미묘한 감정과 컨디션으로 올곧이 한 주를 넘겨버리면 영영 다시 못 쓰고 말 것 같아 피곤을 무릅쓰고 쓰기로 한다. 누가 뭐라할 사람 아무도 없지만.... 처음 세웠던 결심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지금 그냥 넘어가면 왠지 앞으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들었다.

 

몸도 머릿 속도 말이 아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덕분에 양쪽 날갯죽지가 쪼글쪼글 말라 비틀어지는 느낌이다. 벌써 겨울이라기엔 너무 가혹하다. 아직 음력으로는 9월이고... 입동도 조금 더 지나야 하는데.... 손을 꼽아보니 여름이 넉 달, 가을이 한 달, 이제 사상 최대의 한파가 시작된다 치면 또 넉 달을 꽉채우는 겨울이다. 돼지꼬리만큼 짧디 짧은 가을에 대한 기록을 잘 남겨야 한다. 상태는 상태이고, 계획은 계획이다.

 

짧아도 너무 짧았다. 사무실에서도 둘째주에 창립기념식을 기점으로 일이 몰아치더니 정신차려보니 보름이 후딱 지나갔다. 주말 두 번의 결혼식을 다녀오고 나니 쉴 틈도 없었다. 일주일에 하루는 집 밖에 안나가는 날로 정하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일주일에 하루. 휴지기를 지키자.

 

툭 떨어진 기온 탓에 바짝 쪼그라든 몸과 마음의 틈사이로 그동안 봉인되어 있던 여러가지들이 삐져 나왔다. 늘 방심하고 흔들리면 어김없이 기어나오는 겁대가리들. 두더쥐 잡기처럼 둔탁한 망치로 퉁퉁 쳐 넣지 않으면 약을 올리며 뾱뾱 올라오는 것들. 체력이 요구된다.

 

얼룩덜룩 뾰루지로 엉망이 된 얼굴이 내심 못마땅하지만 반성할 수 밖에. 그래도 삼십년동안 관리라는 것 한 번도 해 준 적 없으니 너희들도 참을만큼 참았다고. 이제는 좀 케어하며 살겠다고.

 

작년 딱 이맘때 네팔에 도착했다. 딱 오늘이었다. 이맘때부터 시작한 스트레칭이 거진 1년이 된거다. 무릎 밑 10센치를 내려갈까 말까 하던 두 손끄트머리가 이제는 손바닥이 바닥에 닿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아 지난 5월에 키 쟀을 때 0.4센치 컸었지. 아마 지금 재면 그때보다 더 컸지 싶다. 열심히 하면 2센치 정도는 무난하게 큰다고 하니 열심히 하자.

 

얼굴비대칭 교정기를 샀다. 잘 때 끼고 자다 두시간 정도 지나서 스윽 빼고 계속 잔다. 2개월 정도 해야 효과를 본다는데 일주일 내내 하는게 쉽지는 않다. 뭔가 뼈와 뼈 사이의 움직임이 예전보다 미세하게 달라진 것 같기는 한데, 나빠지는 건 아니겠지. 올 겨울은 보신의 기간으로 삼자. 봄이되면 더 건강하고 예뻐져 있으리라.

 

월말에 몰아서 영화를 세 편이나 봤다. 참 호강했다. 이제 혼자 영화보는 것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풀렸던 봉인들을 하나씩 주섬주섬 수습하고 있다. 오늘 저녁에는 밥먹다가 일일 연속극 '그대없인 못살아'를 보다가 치매걸린 인자씨가 남편의 바람난 옛 애인 애심이 빙의가 되어 얼굴을 요란하게 화장하고 장농을 뒤지면서 아저씨 사랑해요 하니 남편 주현아저씨가 나도 사랑한다 인자야. 그 한마디 하는 바람에 폭풍 울음이 터져버렸다. 쩝. 흑미현미밥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미역국 떠먹고 열무김치 씹어가며 완두콩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다니. 내 눈으로 나를 못보니 망정이지 마주 앉아 밥 먹던 엄마에겐 차마 못할 테러였겠다. 이런 얘기를 쓰려던게 아닌데. 상태가 매우 안좋다.

 

세상 사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최근에야 깨달은 것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대답하기 곤란하거나 거절할 때 '유예'한다는 거다. 한 10년 전 쯤에 알았다면 좀 세상사는게 쉬웠을까. 보류와 유예는 거절이라고. 난 좀 바보였을까. 곧이 곧대로 믿어버리는 고지식한 인간이었나. 내가 그렇게 융통성이 없었나. 뭐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콘크리트 바닥을 다다다다 뚫고 들어가는 심정이다.

 

실수도 책임은 져야 하니까.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어. 어쩔 수 없이 하는건 고생이고 알고 하면 경험이야. 대충 이런 워딩들로 마무리 하면서 점점 나이를 먹어간다.

 

내가 이러다 시집을 못가면 그건 다 송중기 때문이라고. 법적 소송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바르르 떨었더니 엄마의 쿨한 멘트 '송중기가 너랑 안면식이 없으니 법적 소송이 성립이 안되' 뭐 이런 일상.

 

지난 주말에는 모처럼만에 엄마랑 목욕도 갔다오고. 목욕을 모처럼 간게 아니라 엄마랑 간게 모처럼이라며. 뭔가 애에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난 사무실 행사에 해피트리 녹보수 파키라 등등 새식구들이 늘었고, 이제 동양난 꽃잔치는 끝났다고. 겨울이 진짜 오기는 오는갑다. 추위를 잘 버틸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는 어떡하지. 빨리 단축근무 했으면 좋겠다. 11월은 어떻게 보내지. 도망이라도 가야하는 걸까. 뭐 이런 잡념들만 머릿 속에 그득하고.

 

연말까지 지난 가을에 충동구매한 책을 다 읽고 해가 바뀌어 책장을 살 능력이 되면 다시 책을 사자고 결심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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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참 빠르게 지나갔다. 한 주가 시작되었다 싶으면 어느새 목요일, 금요일을 지나 주말이 다가왔다. 첫째주 같은 둘째주를 시작으로 여섯주가 쉴 새 없이 지나가버렸다. 해도 함께 짧아져 퇴근길 하늘 빛이 노랗다 빨개지더니 하얘지고 푸르스름해지더니 다시 까매졌다. 그렇게 3/4분기가 막을 내렸다.

 

주말마다 일정이 빼곡히 들어 앉아 버리는 시간도 없이 알차게 보낸듯 하다. 지난 15일에는 한양대에서 윤민석음악회가 있었고 100인 합창단으로 내 인생의 마지막 무대였을 그 무대에 올랐다. 혼자 준비하고 혼자 축하한 은퇴무대였는데 생각보다 떨지 않고 잘 마쳤다. 그렇게 가사를 외웠는데도 결국 본무대에서는 군데군데 가사를 잊어버렸다. 역시 나는 무대 체질이 아니었다. 22일 토요일에는 못갖마 후배 효인이가 시집을 갔다. 지난 3월에 청도에서 남편되실 분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훠궈를 얻어먹었던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송도까지 결혼식에 다녀왔다. 모처럼만에 후배들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후배들 결혼식에는 그냥 부조만 하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왠지 후배 결혼에 가는 것이 실없는 언니가 되는 것 같아 축하만 잘 하기로 했다. 남자 후배는 더더군다나 가지 않는 것이 맞겠다.

 

추석을 앞두고 사무실에서 이것저것 명절 선물을 챙겨받으면서 집에서도 면이 섰다. 따지고 보니 직장에서 명절을 챙겨받은 것이 일년이 넘었다. 앞으로 얼마나 명절 선물을 챙겨받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만큼은 그냥 감사한 마음 갖기로 했다.

 

나이가 먹으면 시간의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고들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더디고 더디다가 어느새 뒤돌아보면 훌쩍 흘러있던 시간에 조금은 숙연해졌다.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서 또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없다. 그 때의 수준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했던 거라고 자족해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겠지. 뒤를 돌아보는 것이 무의미한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앞으로 나아갈 때 조금 더 잘하기 위해서 뒤를 돌아보는 시간은 아까워 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볼만큼은 충분히 돌아보았다. 이젠 앞으로 시선을 두고 주변을 잘 살펴야겠다.

 

8월 초에 오랜만에 연락이 된 윤정이의 청첩장이 9월을 거쳐 오늘에서야 받게되었다. 그무렵 수진이도 날을 잡았다. 04년 어학연수 후 귀국해서 다시 만났을 때 서로 연락 잘 하지 못하고 살아도 결혼식때는 챙겨주자 했던 게 참 까마득하면서도 엊그제같은데 '그 날'이 오게된 것이다. 친구들이 잘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이제는 경조사가 아니면 얼굴 볼 시간도 만만치 않아졌다. 이런게 사람사는 모습인가 싶다.

 

특별히 다르지 않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슬슬 걸어 퇴근을 하다보면 매일이 다르다. 가게 이름도, 사람들의 표정도, 지나가는 차도 매일이 다르다. 이런 느낌이 지겨워질때도 오겠지. 요즘은 채 노랗게 익지도 않은 은행나무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은행을 피해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곧 있으면 찬바람에 코끝이 시리고 걸어서 퇴근하는 일도 버거워지겠지. 걸을 수 있을 때 부지런히 걷자.

 

지나고보니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항상 수습만 하다가 지쳐버린 일들이 왜 그렇게도 많은지... 앞을 대비하지는 못하더라도 현재에 발맞춰 살면서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아가야겠다. 연말까지는 너무 조급해지지 말자.

 

최근에 다시 고개를 든 책 사는 습관은 조금 절제해야겠다. 우선 책을 사면 다 볼 때까지 다른 책은 사지 않는다. 이것만은 꼭 지키자.

 

2012년 4/4분기가 시작되었다. 시간을 잘 쓰는 법과 조금 더 건강해지는 방법을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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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의 월기를 쓰면서 매월 첫째 주 목요일에 그 전월의 월기를 쓰기로 했는데 8월 월기는 수요일에 쓰게되었다. 반드시 목요일에 써야한다는 형식에 치우치기 보다는 조금 더 충실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형식과 내용에서 몇가지 보충 보완할 지점이 몇가지 발견되어 이것 또한 기록에 남기기로 했다.

 

-우선 지난 7월의 월기는 다소 감정의 부분에 치우친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발생했던 사실과 더불어 소회를 남기는 것에 더욱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억할 만한 상황과 꼭 기억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일에 대한 감회도 기록하는 것이 좋을듯 하다.

 

 8월 8일 둘째주 수요일부터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다소 안정을 찾은 것이 심리상태의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일자리는 집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소요되고 업무또한 노동강도가 크게 격하지는 않아 여러모로 여유도 있고 부담도 덜하다. 좋은 일자리를 찾은 것 같다.

 

 새로 출근했던 그 주부터 사무실 난 화분 하나에 꽃대가 올라오더니 연달아 꽃대가 하나 더 올라왔고 먼저 올라온 꽃대에서 꽃 일곱송이가 만개했다. 난꽃이 피면 좋은 일이 있다고 하는데 찬바람이 불면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

 

 확실히 일을 하지 않는 하루와 출퇴근을 하는 하루는 속도감이 다르다. 구직활동을 하느라 불안하고 초조했던 시간들은 못견디게 힘들었지만 일자리를 찾고 나니 하루가 금방금방 흘러간다. 여러모로 안정을 찾아가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월말에는 태풍이 연달아 두 번이나 지나갔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에 온 나라 전체가 전쟁을 준비하는 마냥 공포와 불안감에 떨었고 우리집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다행이도 큰 사고없이 지나갔다. 태풍과 함께 나의 감정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변화도 지나갔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는 통과의례의 끝이 보이는듯 한다. 아직 연말까지는 넉달이나 남았지만 벌써 한해를 마감하는 준비를 해야하지 않나 싶다.

 

 8월의 화두는 '어른'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이 서른을 넘겨 이런 고민을 하고 앉아있는 것이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사춘기를 별 고민없이 보내버린 후과를 치루는 것이라 생각하며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20대 초반 나를 괴롭혔던 사건과 고민들에 대해 돌이켜 보았다. 사실 그 때와 지금 고민의 초점과 깊이가 달라진 것은 아닌데 일종의 '출력'이 달라진듯 하다. 내가 못견뎌했던 문제들은 외부요소라기 보다는 내 스스로가 악해지고 추해지고 약해지는 부분들이었다. 시간이 훌쩍 흘렀다고 해서 그런 천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일어나는 감정과 마음의 소용돌이를 대면하고 그것과 마주하며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특별히 더 고매하지도 고고하지도 않고 더 선하려 하지도 않고 거부하려 하지 않자 비로소 평정이 찾아왔다. 물론 객관적인 일상생활이라던가 환경적인 요소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좋지 않고 힘들어도 때가 되면 밥을먹고 자야하고 일어나서 출근도 해야하니 감정을 굴리고 굴리며 증폭시켜 널부러져 있기만 할 수는 없는 상황들. 생활의 위대함을 느꼈다.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먹거나 하는 일도 없고, 혼자 슬픔이나 우울함을 즐기듯 자학하는 일도 없어졌다. 좋은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시간을 다채롭게 보내는 방법도 터득했다. 아, 지난 달 중순 새로 발견한 보석같은 부업도 마음을 다스리는데 일조했다. 정신이 사나워질때 일을 하면 마음이 좀 누그러든다. 여러모로 정신건강이 좋아졌다.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불우한 가정의 아이들 이야기를 담아놓은 책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책을 만든 의도가 참 미심쩍긴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부모가 없는 아이가 동생을 챙기고 아픈 조부모를 챙기고 집안일도 도맡아하면서도 어두운 구석 없이 의젓하고 어른스러웠던 까닭은 어린 철부지로 남아 있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데 응석부리고 싶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상처받고 다치기밖에 더했겠냐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되는 것은 더 이상 어리고 미숙했던 감정들에 상처받는 스스로가 못견뎌서 그러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깨달음의 시간들이 쑥쑥 지나간다.

 

 9월에서 12월까지 지인들의 결혼이 빽빽하게 들어 앉았다. 어떤 이의 결혼 소식은 나를 기쁘게 했고, 어떤 소식은 나를 슬프게 했으며, 또 어떤 소식은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고 어떤 이의 결혼 소식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문득 타인의 결혼소식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기복이 왜 그럴까 고민하게 되었다. 일종의 의존성과 소외감이라는 결론이 나왔는데, 관계의 변화에서 오는 소외감이 가장 큰 부분이라고 정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의존성에 대해서도 자각하게 되었다. 애착이라고까지 하기는 좀 뭐하고 의존정도로 보는게 맞을듯하다. 그밖에도 약간의 조바심-나는 언제 제대로된 내 짝을 만날까-과 불안함-나도 짝이 있을까-이 있었다. 이것들도 서두르지 말자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조바심이 해결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만 상할 뿐이다. 조바심내지 말자.

 

 걷기에 조금 중독된 것 같다. 퇴근하고 집까지 걸어오면 한시간이 조금 안걸리는데, 일주일에 두세번은 걸어오는 것 같고 비라도 와서 이틀정도 걷지 못하면 답답함을 느끼고 걷기 시작하면 그 답답함이 조금 없어졌다. 걷는 것이 주는 정체모를 안정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온몸을 둘러싸고 바람이 지나가고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발바닥, 발목, 무릎, 골반까지 올라오는 근육과 뼈의 움직임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하루종일 사무실에 있으면 움직이는 시간보다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고 말도 많이 할 필요없어 생동감이 좀 없는데, 걸으면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청각도 좀 자극하니 걸을 때 그제서야 아, 내가 살아있구나 느끼게 되는듯 하다. 터벅터벅 걸으면서 발가락도 당겨주고 근육이 살짝 긴장하면서 오는 발바닥이 팽팽함도 느껴보고  몸통과 두 팔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도 느껴보고 뭐 그런 거.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걸어야겠다.

 

 생활에서 안정을 찾고 몸관리에도 신경쓰고 있다. 업무시간에는 의식적으로 허리를 펴려고 노력하고 밥먹을때는 의식적으로 많이 씹으려고 노력하고 걸을 때에도 자세를 바르게 하려고 노력중이다. 찬바람도 불고 하니 족욕을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뭐든 시간과 품이 안드는 것이 없다. 과정을 번거롭다 생각하지 말자.

 

 9월 한 달은 명절을 맞이하는 달이니 조금 바쁘더라도 마음의 여유 갖도록 하자. 명절 전에 그동안 연락뜸했던 사람들에게 안부도 묻고 주변을 챙기는 한달로 살아야겠다. 8월은 잘 버텨냈고 곧 좋은 일들이 있을거라 믿자.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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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지난 7월 26일 매월 첫째 주 전월의 '월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게으른 탓에 매일 꼬박꼬박 일기를 쓰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고,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1년에 열두번은 쓸 수 있겠다 싶어 횟수를 그리 정했다. 또 1년에 12번, 10년이면 120번 56년이면 대락 675에서 676회 정도 되는데, 얼마전 결심 수명을 99세에서 87세로 단축시켰기 때문에 앞으로 56년 676회 정도의 기한으로 월기를 쓰고 생을 마감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한 달에 한 번이면 대단히 번거로운 일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56년 짜리 장기적인 무언가를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심정은 떨리고도 설레며 끝까지 완수해 낼 수 있을런지, 676회를 쓸 때까지 살아는 있을런지, 676회를 다 썼는데 계속 살아있으면 그 이후에도 계속 써야하는 건지 등등의 잡생각이 든다. 중요한 건 일단 쓰고 보는 거겠지.

 

 수단과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최근에는 노트북을 펴고 키는 것도 번거로워 두 손에 폰을 꼭 쥐고는 양쪽 엄지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무언가 써내려가는 일이 잦아졌는데, 월기만큼은 노트북으로 쓰기로 했다.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며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정리할 것은 정리할 시간도 필요할 것 같고, 침대에 널부러져 쓰는 것 보다 그래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쓰는 것이 스스로의 한달을 정리하는 과정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시기는 매월 첫째주 목요일에 쓰기로 마음 먹었다. 부득이한 경우 금요일에 쓰되 첫째주 주말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복잡한 월말을 피해 월초로 시기를 잡았는데 시간이라는 것이 오묘해서 가면 갈수록 사람의 감각과 기억을 희석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첫째주 목요일에 노트북이 고장나서 금요일까지 못고친다면 그때는 폰으로 쓰도록 한다.

 

 자료의 축적은 티스토리가 망하지 않는 한 계속 여기 이 블로그에 하고, 혹시라도 서버 장애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한글파일로 저장해서 메일에 보관한다. 그 옛날 왕실의 실록에 비할만큼 중한 자료는 아닐지라도 이 기록은 나 아니면 이렇게 지켜줄 사람이 없으니 나라도 실록을 모시듯 해야 하지 않겠나. 1년 치의 기록은 출력을 해서 보관을 하고, 10년 치의 기록은 제본을 해두면 그때가서 또 색다른 의미가 있을 듯 싶다.

 

 그럼 이제 서론은 이만 하고, 써보기로 하자.

 

 

-2012. 07_곰국

 

 참으로 불안한 한 달이었다. 생애 마지막 독립이랍시고 차려 놓았던 살림을 내 손으로 하나 하나 정리하고서는 면목없는 표정으로 이렇다 할 변명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30년 인생에서 이번 달 만큼 불안하고 정신 사나운 달도 없었다. 단거리용 경비행기가 연료가 떨어져 불시착한 마냥 그대로 주저 앉아 버린 듯 했다.

 

 이번 달에 가장 고민하게 되는 부분은 '책임'의 문제였다. 내 인생, 내 진로, 내 미래. 나는 나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답이 영 나오지 않는 것이 신통치 않다. 오래 전에 읽었던 어느 책의 글귀에서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은 것이라는 그 거창한 문구가 양쪽 어깨를 짓누르면서 자신감도 저 바닥으로 툭 떨어져 버리고, 본의 아니게 실없는 사람이 되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다 별 실속도 없이 다시 백수상태가 되어 버려 면목도 없고 그저 민망할 따름이다.

 

 온 도시 전체가 곰국을 끓이고 있다. 며칠 외가에 다니러 가는 엄마가 남겨진 자식들을 위해 커다란 스테인리스 들통에 한가득 곰국을 끓여 부엌은 물론이거니와 집안 전체에 그 열기가 퍼져 푹푹 찌는데도 그게 몇날 며칠은 일용할 양식이 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묵묵히 기다릴 수 밖에 없듯이 한여름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중이다.

 

 지난 한달동안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얻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돈, 직업, 보금자리, 자신감, 일시적인 희망, 일시적인 꿈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돌아보니 불안감과 그 불안감 속에서 동요하지 않는 스스로의 더딘 성장을 얻은 것 같다. 남 탓하지 않기. 나의 과오를 겸허히 받아들이기.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계속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다. 왠지 죽기 전까지는 계속 아마추어일 듯 하다. 늘 미숙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좌절할텐데 조금씩 더 의연해지면 어느 순간에는 조금 덜 불안하겠지.

 

 사람들이 자꾸 묻는다. 뭘 하고 싶냐고. 나는 뭘 하고 싶은걸까. 언제 답을 찾을까. 그 답이 과연 있기나 한 걸까. 그래도 소기의 성과라면 목표 두가지가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하나는 칠순기념으로 미니스커트 입고 남미로 여행을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팔순기념으로 광동화를 배워 홍콩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나이 마흔과 쉰, 환갑 때의 목표는 차차 세우기로 했다.

 

 7월의 마지막 주 주말엔 거의 10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에 오랜만에 만났어도 몰라볼 정도는 아니었는데, 10년의 틈은 어느새 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어색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반가움은 반가움대로 있었지만 서로가 영향을 주지 않고도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왔던 만큼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그 친구는 수다로 풀고 싶은 생활의 스트레스가 나에겐 그저그런 라디오 소리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크게 개입해야 할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잘 살면 될 것 같다. 갑자기 내가 좀 늙은 것 같다.

 

 월기를 쓰기로 마음먹고 첫번째 쓰는 것인데 조금 더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쓰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그냥 숨기지 않기로 했다. 없는 것을 꾸며내고, 있는 것을 감추기에는 사실 좀 여유가 없다.

 

 얻은 게 영 없는 건 아니다. 면허 딴 지 7년 만에 갱신도 하고 졸업한 지 2년 반 만에 교원 자격증도 찾아왔지만 지금 당장은 쓸데가 없다. 언젠가 써먹을 날이 있을 거라며 길가에 굴러다니는 아이템 줍듯 수거한 것인데 그 언젠가 먼 훗날에 밑천이 될 날이 있겠지.

 

 얼마 전에 '덤덤하게 얘기하는구나'라는 말을 들으면서 연상 작용으로 작년 봄, 올해 봄 똑같은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덤덤하게 말하기 힘든 일들에 대해 덤덤하게 말하는 내 자신을 보며 감정선에 살짝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그냥 나이먹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나간 일들에 대해 감정을 남기는 것이 스스로에게 큰 도움이 못된다는 걸 깨달아서 그런 것도 같고...

 

 31일을 꽉 채운 7월이 지나갔는데 또 31일을 꽉 채울 8월이 시작됐다. 집안 구석구석이며 길거리에, 대로변에, 온 천지에 여전히 묵묵하게 곰국을 끓이고 있다. 8월을 잘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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