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 놓고 있는 사이에 11월이 시작해버렸다. 목요일에 새로운 한 달을 시작해버려서 어영부영 그냥 넘어갈 뻔 했다. 이걸 첫째 주로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얼떨결에 금요일로 넘어왔고 다음주 목요일쯤 쓰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97% 정도였는데... 뭔가 어수선하고 복잡미묘한 감정과 컨디션으로 올곧이 한 주를 넘겨버리면 영영 다시 못 쓰고 말 것 같아 피곤을 무릅쓰고 쓰기로 한다. 누가 뭐라할 사람 아무도 없지만.... 처음 세웠던 결심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지금 그냥 넘어가면 왠지 앞으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들었다.

 

몸도 머릿 속도 말이 아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덕분에 양쪽 날갯죽지가 쪼글쪼글 말라 비틀어지는 느낌이다. 벌써 겨울이라기엔 너무 가혹하다. 아직 음력으로는 9월이고... 입동도 조금 더 지나야 하는데.... 손을 꼽아보니 여름이 넉 달, 가을이 한 달, 이제 사상 최대의 한파가 시작된다 치면 또 넉 달을 꽉채우는 겨울이다. 돼지꼬리만큼 짧디 짧은 가을에 대한 기록을 잘 남겨야 한다. 상태는 상태이고, 계획은 계획이다.

 

짧아도 너무 짧았다. 사무실에서도 둘째주에 창립기념식을 기점으로 일이 몰아치더니 정신차려보니 보름이 후딱 지나갔다. 주말 두 번의 결혼식을 다녀오고 나니 쉴 틈도 없었다. 일주일에 하루는 집 밖에 안나가는 날로 정하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일주일에 하루. 휴지기를 지키자.

 

툭 떨어진 기온 탓에 바짝 쪼그라든 몸과 마음의 틈사이로 그동안 봉인되어 있던 여러가지들이 삐져 나왔다. 늘 방심하고 흔들리면 어김없이 기어나오는 겁대가리들. 두더쥐 잡기처럼 둔탁한 망치로 퉁퉁 쳐 넣지 않으면 약을 올리며 뾱뾱 올라오는 것들. 체력이 요구된다.

 

얼룩덜룩 뾰루지로 엉망이 된 얼굴이 내심 못마땅하지만 반성할 수 밖에. 그래도 삼십년동안 관리라는 것 한 번도 해 준 적 없으니 너희들도 참을만큼 참았다고. 이제는 좀 케어하며 살겠다고.

 

작년 딱 이맘때 네팔에 도착했다. 딱 오늘이었다. 이맘때부터 시작한 스트레칭이 거진 1년이 된거다. 무릎 밑 10센치를 내려갈까 말까 하던 두 손끄트머리가 이제는 손바닥이 바닥에 닿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아 지난 5월에 키 쟀을 때 0.4센치 컸었지. 아마 지금 재면 그때보다 더 컸지 싶다. 열심히 하면 2센치 정도는 무난하게 큰다고 하니 열심히 하자.

 

얼굴비대칭 교정기를 샀다. 잘 때 끼고 자다 두시간 정도 지나서 스윽 빼고 계속 잔다. 2개월 정도 해야 효과를 본다는데 일주일 내내 하는게 쉽지는 않다. 뭔가 뼈와 뼈 사이의 움직임이 예전보다 미세하게 달라진 것 같기는 한데, 나빠지는 건 아니겠지. 올 겨울은 보신의 기간으로 삼자. 봄이되면 더 건강하고 예뻐져 있으리라.

 

월말에 몰아서 영화를 세 편이나 봤다. 참 호강했다. 이제 혼자 영화보는 것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풀렸던 봉인들을 하나씩 주섬주섬 수습하고 있다. 오늘 저녁에는 밥먹다가 일일 연속극 '그대없인 못살아'를 보다가 치매걸린 인자씨가 남편의 바람난 옛 애인 애심이 빙의가 되어 얼굴을 요란하게 화장하고 장농을 뒤지면서 아저씨 사랑해요 하니 남편 주현아저씨가 나도 사랑한다 인자야. 그 한마디 하는 바람에 폭풍 울음이 터져버렸다. 쩝. 흑미현미밥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미역국 떠먹고 열무김치 씹어가며 완두콩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다니. 내 눈으로 나를 못보니 망정이지 마주 앉아 밥 먹던 엄마에겐 차마 못할 테러였겠다. 이런 얘기를 쓰려던게 아닌데. 상태가 매우 안좋다.

 

세상 사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최근에야 깨달은 것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대답하기 곤란하거나 거절할 때 '유예'한다는 거다. 한 10년 전 쯤에 알았다면 좀 세상사는게 쉬웠을까. 보류와 유예는 거절이라고. 난 좀 바보였을까. 곧이 곧대로 믿어버리는 고지식한 인간이었나. 내가 그렇게 융통성이 없었나. 뭐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콘크리트 바닥을 다다다다 뚫고 들어가는 심정이다.

 

실수도 책임은 져야 하니까.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어. 어쩔 수 없이 하는건 고생이고 알고 하면 경험이야. 대충 이런 워딩들로 마무리 하면서 점점 나이를 먹어간다.

 

내가 이러다 시집을 못가면 그건 다 송중기 때문이라고. 법적 소송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바르르 떨었더니 엄마의 쿨한 멘트 '송중기가 너랑 안면식이 없으니 법적 소송이 성립이 안되' 뭐 이런 일상.

 

지난 주말에는 모처럼만에 엄마랑 목욕도 갔다오고. 목욕을 모처럼 간게 아니라 엄마랑 간게 모처럼이라며. 뭔가 애에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난 사무실 행사에 해피트리 녹보수 파키라 등등 새식구들이 늘었고, 이제 동양난 꽃잔치는 끝났다고. 겨울이 진짜 오기는 오는갑다. 추위를 잘 버틸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는 어떡하지. 빨리 단축근무 했으면 좋겠다. 11월은 어떻게 보내지. 도망이라도 가야하는 걸까. 뭐 이런 잡념들만 머릿 속에 그득하고.

 

연말까지 지난 가을에 충동구매한 책을 다 읽고 해가 바뀌어 책장을 살 능력이 되면 다시 책을 사자고 결심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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