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어쩜 그렇게 까맣게 잊어버릴수도 있는건지. 대단하다. 오늘은 3월 16일 토요일이고, 계산대로라면 열흘을 훌쩍 넘겨 생각이 난 건데. 말도 안된다. 무슨 감정의 협곡에 빠져서 매일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 쓰기로 한 것까지 잊어버린 것인지. 앞으로는 다이어리나 일기장에 남은 월기에 대한 일정을 빼곡히 정리해놓고 체크하면서 써야겠다.

 

확실히 뇌에 문제가 생긴게 틀림없다. 완전 바보처럼 싸악 잊어버리다니. 뭔가 좀 끔찍한 기분이 들면서 어이없는 짓을 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빨리 이 바보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것 밖에 도리가 없다.

 

2월 말에 걸쳐 3월 5일까지 북경으로 휴가를 다녀왔고, 도착하자마자 그날 바로 개강을 해서 수업을 들었다. 화요일에 두과목, 수요일에 한과목 수강신청을 했는데, 수요일 2교시에는 청강으로 한과목 들으니 총 네과목을 듣는 셈이다. 첫주 오리엔테이션, 둘째주부터 제대로 수업을 들은건데 아 피곤하다. 밥도 제때 못먹어서 배고파서 지옥에 다녀오는 느낌이다.

 

2월은 설 명절이 끼어 있었지만 크게 특이사항 없었다. 다니던대로 출퇴근하고, 남는 시간에 책도 좀보고. 내 인생에 가장 한가했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춥고 바람은 쌩쌩하다. 봄이 온다는게 실감은 나지 않지만 곳곳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사무실 3층 입구 앞 수양버들 가지에 오독오독 돋아나는 새싹도 그렇고, 1층 화단에 목련 꽃눈도 꽃망울을 터트리기 일보직전이다. 라디오에서는 때이른 버스커버스커의 꽃송이가, 벚꽃엔딩이 흘러 나온다. 아직 이르다. 사람들은 여전히 두꺼운 코트를 입고 목에도 머플러는 둘렀다. 바람은 오히려 한겨울보다 더 씽씽 분다. 나도 모두도 아직 봄을 맞을 준비는 되지 않았다.

 

이제 바보의 족쇄에서 좀 벗어났으니. 다시는 이런 백짓장같은 망각은 일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다짐해야겠다. 누구나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할 수 있지만 반성하고 다음부터 안그러면 되는거다. 1단계로 다이어리에 다 표시해놓는거다. 미리미리 써놓기. 2단계는.... 열심히 쓰는 거겠-_-;;

 

일단 2말3초 북경 휴가얘기부터 간단히 적자면.. 계획했던 일의 3분의 1만 제대로 하고 나머지는 귀찮아서 폐기, 헛탕치기 등으로 끝남. 먹는 것 원없이 먹었고, 안마는 분에 넘치게 받고 왔고. 보고싶은 사람들 그런대로 다 만나고 왔고. 6일은 참 긴 시간이었는데, 첫날 오후에 도착하고 마지막날 한낮에 돌아왔으니 제대로는 4일정도 있었다고 봐야겠다. 15일 연월차중 3일을 소모했다. 앞으로 연월차 쓸 일이 또 있을까? 1년에 15일이면 하나도 빼먹지 않고 다쓴다 치면 한달에 평균 하루 이상은 쓸 수 있는 것인데. 뭐 놀면 뭐하나.

 

중국은 어쨌든 계산해보면 평균적으로 1년에 한 번은 다녀온 셈이다. 관련 분야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래저래 다녀온 걸 생각하면 영 적게 간 건 아니다. 일년에 한 번은 중국어를 말하는 셈인데, 안까먹고 그래도 이렇게 써먹으니 다행이다. 물론 4년동안 아니 10학기동안 들인 등록금에 비하면 택도 없지만 그래도 평생을 두고 1년에 한 번 써먹는다고 생각하면 뭐 영 아깝지는 않다고 봐야겠다. 또 석사끝나고 정말 중국에서 박사를 하게되면 그때는 제대로 써먹는 거니까.

 

근데 이번에 다녀와보니 조만간 북경 물가가 서울물가보다 비싸질 것 같다. 집값도 엄청비싸고 음식값도 많이 올랐다. 현실적으로 모아둔 돈 한 푼 없는데 유학이 가능할까 싶다. 일단은 열공해보자.

 

개강하고 수업들으면서 곧 현실주의자가 됐다. 배는 너무 고프고 공부량은 엄청 많다. 우울하다. 나같은 타고난 백수한량 나무늘보가 빡세게 살 수 있을까? 좀 많이 우울하다. 난 배고픈게 정말 싫고 못참겠는데. 저녁을 못먹고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좀 많이 힘들다.

 

마지막으로 휴가가기 직전 XX를 만났고... 뭔가 좀 어이없지만 계획했던대로 끝마무리를 했다. 잘하지는 못하고 그냥 했다. 근데.. 영 개운하지가 않다. 이전에는 뭐랄까 되도 않는 희망이든 실오라기같은 가능성이라도 움켜쥐고 있었던건데.. 이건 뭐 깔끔하지도 않고 공허함만 증폭되어서 사람이 누덕누덕해진 것 같다. 신데렐라의 12시 마법이 싸악 풀리고 손에 빗자루를 쥔 느낌이랄까.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거였어. 이게 내 자신감의 한계이고 마지막이니까.

 

어쨌든 이래저래 인생 제 2막 1장 시작되었고, 당분간은 러닝시스템으로 갈 수 밖에. 몸 컨디션만 좀 좋으면 다른건 소원이 없겠다. 일단 ㄱㄱ 4월에는 잊어버리지 말고 때맞춰 잘 쓰자. 이것도 천만다행아닌가. 3월 깜빡하고 걍 4월로 넘어갔으면 이번 달 월기는 아예 못쓸뻔했는데. 이제라도 막차탔으니 다행으로 여기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화이팅하자. 화이팅! 

 

 

'Pulmaya 月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Pulmaya 月記 (10) 2013. 04_인내  (0) 2013.05.02
Pulmaya 月記 (9) 2013. 03_찰나  (0) 2013.04.06
Pulmaya 月記 (7) 2013. 01_전환  (2) 2013.02.08
Pulmaya 月記 (6) 2012. 12_다큐  (1) 2013.01.04
Pulmaya 月記 (5) 2012. 11_준비  (0) 2012.12.06
블로그 이미지

Pulmay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