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013년으로 넘어 왔다. 서른 둘이 되었다. 정말 기다려왔던 서른 둘.

스물아홉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하는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마구 꼬여서 혼자서 아홉수 삼재를 치룬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마 미치거나 돌연사했을지도 모르는 그 시간들. 서른 둘이라고 하니 얼마나 홀가분하고 날아갈듯 한지. 시원섭섭하지 않고 그냥 속이 다 시원하다. 나이 먹는다는 두려움도 없다. 서른하나와 서른 둘은 크게 구별짓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한가한 겨울일 것이 확실한 2012-13 겨울 시즌. 지난 12월과 다름없이 네시 반 퇴근하면 사람들을 만나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서 더욱 너그럽고 여유로워지는 시간들이었다.

 

작년 연말에 찾아왔던 대선 멘붕에서도 점점 벗어나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고, 앞으로 5년, 그 후 다시 5년, 10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게 되면서 조금 더 계획적, 장기전망적 인간형으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한 달 넘게 미루어 두었던 노트북 어댑터를 구매하여서 이번 월기는 침대에 배깔고 누워 노트북으로 쓰고 있다. 하기로 결정한 것들은 미루지 말고 그때 그때 해치우자.

 

2013년 1월은 2012년 13월과 같은 느낌이라 이번 주말 설이 지나야 비로소 진짜 한 살 더 먹었고, 해가 바뀌었다는 실감이 날 것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새해의 결심과 포부를 밝혀 본다.

 

11월 22일 원서를 쓰고 12월 7일 합격자 발표하여 1월 3일 학과 시무식 참석, 1월 14일 가등록, 2월 2-3일 오리엔테이션, 2월 6일 등록. 의 절차를 거쳐 드디어 석사과정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2년 반, 5학기의 기간동안 웬만하면 중간에 쉬지 않고 마칠 계획이다. 학부 입학 10년 만에 다시 신입생이 된 감회라면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정말 눈물 질질 짜며 알바 구하고 대출받고 하면서 겨우겨우 졸업한지 3년 만에 다시 학업이라니. 학부때와 조건이 달라진 것은 거의 없고 빌려서 벌면서 갚으면서 다니는 것에 조금 익숙해지고 담담해졌다고 해야할까. 익숙해지니까 크게 괴롭고 힘들지 않다. 뭐 집에서 못받쳐주고 하고 싶은거 하고 살려면 별 도리 없다 생각하니 스트레스 받지도 않는다. 적당히 취직해서 적당히 벌고 필요 이상으로 비싼 상품을 소비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어디 가서 술먹고 춤추고 그러면서 적당히 풀고 뭐 그런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고 그렇게 살려는 니즈나 디자이어도 없으니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란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이야기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되묻고 싶다, '그래서 진짜 니가 하고 싶은게 뭔데?' 난 지난 10년 동안 그리고 최근 2년 동안 정말 내가 하고 싶은게 뭔지를 찾는데 내 시간을 들이고 어떤 날은 밤에 잠도 못자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낙담하고 좌절하면서 이제 겨우 찾았으니 앞으로 이 길로 주욱 밀고 가겠다. 죽을 것처럼 병적으로 하지는 않고 클로드 모네처럼 열심히는 해서 장수하여 이 분야의 원로도 되고 밥벌이도 하고 남도 먹여살리는 그런 사람이 되야겠다. 앞으로 주어진 하루 24시간 중에 잠자는 시간도 귀히 여겨 잠도 잘자고 먹는 것도 잘 먹고 1분 1초도 무의미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퇴근하고 수업듣고 늦게 집에 오고 그런 일들이 처음에는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한학기 잘 적응해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그 옛날 옛적 미친듯이 몰아쳐서 일하던 때에 비하면 얼마나 규칙적인 일상인가. 더군다나 방학도 있고. 보람있게 즐겁게 살고 싶다. 그래서 논문 쓰고 학위 받을때 가장 므흣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 다음 계획은 그때가서 밝히면 된다. 앞으로 수강신청 등의 자잘한 일정이 남아 있지만 크게 고비로 우려되는 지점은 없고 일정에 발맞추어 가면 된다. 중심 잘 잡고 잘해보자.

 

서른 하나, 서른 둘. 사회적으로도 뭔가 중견의 역할을 하기엔 아직 좀 모자르다. 30대 초 중반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관계를 만들면서 마흔줄에 접어 들었을때에는 그 누구보다 잘나가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계산으로는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지도를 들고 방향을 잡으면서 하는 여행이 네비켜놓고 아가씨 목소리 따라 가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네비는 목적지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가며 어디서 꺾을지 말지 그냥 주어진대로 가는거지만 지도를 펴놓고 가면 샛길이나 이런데를 스스로 판단해 가면서 길찾는 즐거움과 성취감이 있으니까. 그리고 정 필요하면 길을 새로 닦으면 된다. 요즘의 나는 그 어느때보다 자신감도 넘치고 즐겁다. 근심 걱정이 영 없지는 않으나 내려놓을 줄도 알게 되었다. 스물이 넘어서 찾아왔던 사춘기가 남들보다 더 어른이 되었던 것 같다. 10대에 사춘기가 온 친구들은 대부분이 중고등시절의 성실성으로 그 다음 생애의 방향이 정해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입지가 좁아졌던 것 같다. 그래도 대학이라는 문턱을 넘은 후 찾아온 사춘기는 스물에서 서른을 넘어오는 시기에 더욱 깊은 고민을 하게 하고 향후 30에서 50년의 방향을 잡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20대의 사춘기가 좋다. 30대나 40대 혹은 그 이후에 찾아오는 사춘기는 안정을 도모하는 시기의 균형을 깨버리는 것 같다. 요즘은 자꾸 늙은이처럼 사람 타고난 그릇만큼 살게 된다는 생각이 드는데, 확실히 나의 그릇은 엄청 작았던 것 같고, 요즈음은 새로 그릇을 하나 빚기 시작한 것 같아서 설렌다. 잘 살아볼란다.

 

어쩌다 보니 1월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한 것이 없는데, 사무실에서 중순에 강원도 화천 그 추운 동네로 워크샵 갔다 온 것 외에 특이사항은 없으므로 머릿 속을 꾸물거리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으로- 2월 말에 북경 낙영이네 잠시 다녀 오는 것으로 결정했으니, 다음 월기에는 아마도 그 이야기를 많이 쓸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가 하나같이 키 많이 컸다는 소리다. 지난 1년간 부단히 스트레칭하면서 노력했고, 자세도 바꾸느라 공을 들였다. 가슴펴고 등펴고 어깨펴고 허리펴고. 그러다 보니 인생도 피는 것 같다.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돈 많이 벌어서 그 돈으로 보험들고 병걸리고 보험타서 병원다니고 그게 제일 불쌍한 일 같다. 하고싶은 걸 찾아서 정말 다행이고 그것들을 해 나아가는데 배포도 조금 더 두둑해진 것 같아 너무 다행이다. 스스로가 대견하고 기특하고 지난 시기 함께해준 사람들, 도와준 사람들에게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 5년, 10년 뒤에는 물심양면으로 보은하며 살고 싶다.

 

누구나 자기의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그것을 인지하는 사람만이 그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난 그것만 믿기로 했다. 내 세상의 주인은 나. 각자 자기 세상의 주인으로 살 때 정말 행복한 세상이 될 것 같다. 나도 살고 남도 돕는 새로운 길을 떠나보자.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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