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의 월기를 쓰면서 매월 첫째 주 목요일에 그 전월의 월기를 쓰기로 했는데 8월 월기는 수요일에 쓰게되었다. 반드시 목요일에 써야한다는 형식에 치우치기 보다는 조금 더 충실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형식과 내용에서 몇가지 보충 보완할 지점이 몇가지 발견되어 이것 또한 기록에 남기기로 했다.

 

-우선 지난 7월의 월기는 다소 감정의 부분에 치우친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발생했던 사실과 더불어 소회를 남기는 것에 더욱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억할 만한 상황과 꼭 기억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일에 대한 감회도 기록하는 것이 좋을듯 하다.

 

 8월 8일 둘째주 수요일부터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다소 안정을 찾은 것이 심리상태의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일자리는 집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소요되고 업무또한 노동강도가 크게 격하지는 않아 여러모로 여유도 있고 부담도 덜하다. 좋은 일자리를 찾은 것 같다.

 

 새로 출근했던 그 주부터 사무실 난 화분 하나에 꽃대가 올라오더니 연달아 꽃대가 하나 더 올라왔고 먼저 올라온 꽃대에서 꽃 일곱송이가 만개했다. 난꽃이 피면 좋은 일이 있다고 하는데 찬바람이 불면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

 

 확실히 일을 하지 않는 하루와 출퇴근을 하는 하루는 속도감이 다르다. 구직활동을 하느라 불안하고 초조했던 시간들은 못견디게 힘들었지만 일자리를 찾고 나니 하루가 금방금방 흘러간다. 여러모로 안정을 찾아가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월말에는 태풍이 연달아 두 번이나 지나갔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에 온 나라 전체가 전쟁을 준비하는 마냥 공포와 불안감에 떨었고 우리집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다행이도 큰 사고없이 지나갔다. 태풍과 함께 나의 감정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변화도 지나갔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는 통과의례의 끝이 보이는듯 한다. 아직 연말까지는 넉달이나 남았지만 벌써 한해를 마감하는 준비를 해야하지 않나 싶다.

 

 8월의 화두는 '어른'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이 서른을 넘겨 이런 고민을 하고 앉아있는 것이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사춘기를 별 고민없이 보내버린 후과를 치루는 것이라 생각하며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20대 초반 나를 괴롭혔던 사건과 고민들에 대해 돌이켜 보았다. 사실 그 때와 지금 고민의 초점과 깊이가 달라진 것은 아닌데 일종의 '출력'이 달라진듯 하다. 내가 못견뎌했던 문제들은 외부요소라기 보다는 내 스스로가 악해지고 추해지고 약해지는 부분들이었다. 시간이 훌쩍 흘렀다고 해서 그런 천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일어나는 감정과 마음의 소용돌이를 대면하고 그것과 마주하며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특별히 더 고매하지도 고고하지도 않고 더 선하려 하지도 않고 거부하려 하지 않자 비로소 평정이 찾아왔다. 물론 객관적인 일상생활이라던가 환경적인 요소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좋지 않고 힘들어도 때가 되면 밥을먹고 자야하고 일어나서 출근도 해야하니 감정을 굴리고 굴리며 증폭시켜 널부러져 있기만 할 수는 없는 상황들. 생활의 위대함을 느꼈다.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먹거나 하는 일도 없고, 혼자 슬픔이나 우울함을 즐기듯 자학하는 일도 없어졌다. 좋은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시간을 다채롭게 보내는 방법도 터득했다. 아, 지난 달 중순 새로 발견한 보석같은 부업도 마음을 다스리는데 일조했다. 정신이 사나워질때 일을 하면 마음이 좀 누그러든다. 여러모로 정신건강이 좋아졌다.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불우한 가정의 아이들 이야기를 담아놓은 책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책을 만든 의도가 참 미심쩍긴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부모가 없는 아이가 동생을 챙기고 아픈 조부모를 챙기고 집안일도 도맡아하면서도 어두운 구석 없이 의젓하고 어른스러웠던 까닭은 어린 철부지로 남아 있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데 응석부리고 싶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상처받고 다치기밖에 더했겠냐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되는 것은 더 이상 어리고 미숙했던 감정들에 상처받는 스스로가 못견뎌서 그러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깨달음의 시간들이 쑥쑥 지나간다.

 

 9월에서 12월까지 지인들의 결혼이 빽빽하게 들어 앉았다. 어떤 이의 결혼 소식은 나를 기쁘게 했고, 어떤 소식은 나를 슬프게 했으며, 또 어떤 소식은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고 어떤 이의 결혼 소식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문득 타인의 결혼소식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기복이 왜 그럴까 고민하게 되었다. 일종의 의존성과 소외감이라는 결론이 나왔는데, 관계의 변화에서 오는 소외감이 가장 큰 부분이라고 정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의존성에 대해서도 자각하게 되었다. 애착이라고까지 하기는 좀 뭐하고 의존정도로 보는게 맞을듯하다. 그밖에도 약간의 조바심-나는 언제 제대로된 내 짝을 만날까-과 불안함-나도 짝이 있을까-이 있었다. 이것들도 서두르지 말자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조바심이 해결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만 상할 뿐이다. 조바심내지 말자.

 

 걷기에 조금 중독된 것 같다. 퇴근하고 집까지 걸어오면 한시간이 조금 안걸리는데, 일주일에 두세번은 걸어오는 것 같고 비라도 와서 이틀정도 걷지 못하면 답답함을 느끼고 걷기 시작하면 그 답답함이 조금 없어졌다. 걷는 것이 주는 정체모를 안정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온몸을 둘러싸고 바람이 지나가고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발바닥, 발목, 무릎, 골반까지 올라오는 근육과 뼈의 움직임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하루종일 사무실에 있으면 움직이는 시간보다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고 말도 많이 할 필요없어 생동감이 좀 없는데, 걸으면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청각도 좀 자극하니 걸을 때 그제서야 아, 내가 살아있구나 느끼게 되는듯 하다. 터벅터벅 걸으면서 발가락도 당겨주고 근육이 살짝 긴장하면서 오는 발바닥이 팽팽함도 느껴보고  몸통과 두 팔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도 느껴보고 뭐 그런 거.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걸어야겠다.

 

 생활에서 안정을 찾고 몸관리에도 신경쓰고 있다. 업무시간에는 의식적으로 허리를 펴려고 노력하고 밥먹을때는 의식적으로 많이 씹으려고 노력하고 걸을 때에도 자세를 바르게 하려고 노력중이다. 찬바람도 불고 하니 족욕을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뭐든 시간과 품이 안드는 것이 없다. 과정을 번거롭다 생각하지 말자.

 

 9월 한 달은 명절을 맞이하는 달이니 조금 바쁘더라도 마음의 여유 갖도록 하자. 명절 전에 그동안 연락뜸했던 사람들에게 안부도 묻고 주변을 챙기는 한달로 살아야겠다. 8월은 잘 버텨냈고 곧 좋은 일들이 있을거라 믿자.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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