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드를 산 기념으로 이번 월기는 패드로 작성한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기계가 아니라 좀 어설프지만 그래도 도전!


벌써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살랑살랑 귓바퀴를 쓰다듬는다. 가을은 9월 말이나 되어야 온다지만 나는 벌써 가을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는 주어. 월기를 쓰면서 거의 처음 쓰는 호칭인듯. 그래. 나는 쭈욱 내 얘기를 해왔는데 남의 이야기처럼 굴려고 애썼던 것 같다. 객관화에 너무 치중한 것이 다소 텁텁하고 밋밋했던 것에 일조한듯. 어쨌거나 8월은 끝났고 9월로 넘어 왔다.


바쁜 8월이었다. 새로운 사무실에 적응하고, 정신 없이 일하면서 그 와중에 미래를 생각했다. 정국은 뜨거웠고 나의 일상도 뜨거웠다. 머리는 복잡했고 마음은 심란했다. 어쨌든 새로운 사무실에 그럭저럭 자리 잡았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그냥 생각하지 말자.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도 없고 굳이 스스로를 힘들게 할 필요도 없다.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가을을 준비했다. 그렇게 마음 졸였던 학교도 등록했고 컴퓨터 학원도 등록했다. 뭔가 일을 벌인다는 것 나쁘지 않다. 일 년 동안 조금 정체되어 있었으니까. 연말까지는 부지런히 살자. 하나하나 해나가는 일을 너무 크게 생각하지는 말고 그냥 담담하게, 덤덤하게 치루어 나가자. 


9월의 월기는 조금 묵혀두었다 썼다. 열두시는 지났지만 9월 8일로 치고, 일주일을 더 묵혔다. 어제는 대련 통우 수진이가 시집을 갔다. 저녁에는 과 동기 아름이의 월말 결혼 전 모임이 있었다. 바야흐로 결혼의 시즌이다. 수진이는 그리스 산토리니로 신혼여행을 떠났고 아름이는 청첩장 봉투에 사람 잘 챙기는 승현이라고 써 주었다. 부끄럽고 고맙다. 수진이의 결혼식에 함께 간 윤정이는 올 여름 몸이 안좋았다. 나도 속상하고 걱정됐다. 대전에서 힘겹게 올라온 윤정이가 안쓰럽고도 기특했다. 윤정이는 서울에만 오면 큰 건물과 인파에 미물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고 했다. 동감했다. 서울은 사람을 미물로 만든다. 우리는 대련에서 함께 살던 그 때가 우리 인생에서 즐겁고 여유로웠던 때라고 함께 기억했다. 난 앞으로도 소박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지만 인생은 녹녹하지 않다. 부자는 아니어도 좋지만 허덕이며 살고 싶지는 않은데...


타자도 어설프고 낼 출근도 해야 하는데 뭔가 주저리주저리 하고픈 말이 많다. 평생을 삼십대 초반으로 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양보해서 40대까지도... 이제 20년이 채 남지 않은 이 시간을 잘 보내야 앞으로의 나의 인생이 잘 마무리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물 최승현의 삼십대는 바쁘지만 묵묵하고 꿋꿋할 것이다. 


내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나도 몸에 걸맞는 옷을 입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조금은 버겁다. 누구나 다 거쳐가는 결혼과 출산, 육아는 조금 미뤄야 하고, 그것들이 모두 내마음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받아 들이게 되었다. 오늘 월기는 유난히 말을 다듬어 쓰고 있다. 오타도 많이 나고 속도도 붙지 않는데 그래서 더 공을 들이게 되는걸지도 모르겠다. 쿼티 자판은 확실히 익숙하지가 않다. 특히 엄지로만 쓰는 쿼티 자판은 거의 처음이다. 모든 일은 처음이 있게 마련이고, 익숙해지는 것을 마다하지 말자. 앞으로 살면서 아직까지도 해보지 못한 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처음을 두려워 말고, 적응을 귀찮아 하지 말자. 내 몸의 관성을 경계하고 바보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하자. 9월은 바쁘지만 추석에 쉬어가니 지나고 나면 모든 결정을 잘 했다고 스스로 대견하게 여길 날이 오리라. 힘내고 힘내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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