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정기적인 과업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수행하는데 그 의의가 있는데. 너무 태만했다.

여름을 그냥 관통했다. 바쁜 일상과 바쁜 심신에 굴복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벌써 팔월 하순인데 석달치 밀린 기록을 지금 쓰지 않으면 영원히 손놓을까봐 이렇게라도 부여 잡아본다.

스스로와의 대면이 좀 두려웠다. 나이 서른셋에도 평생 없던 일이 생기고 아마 죽는 그날도 처음 죽음을 맞이하는 걸꺼라 위로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오늘도 처음 내일도 처음 앞으로 계속 처음맞는 날을 살아가야겠지.

몇 년 전부터 서른셋엔 뭘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결혼하고 가정도 꾸리고 자식도 낳아 기르고 이런 사소하지만 고귀한 것들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서글픈 삶이여.

5월엔 경주 7월엔 광주와 말일에 부여를 다녀 왔다. 국내여행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제천과 충주에 다녀올 계획도 세웠다. 부지런히 다니고 더 부지런히 사색해야지.

기간이 늘어질수록 할 말은 줄어든다. 정신무장의 기세로 짧게 단발했지만 그렇다고 지나간 일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인생은 실수의 연속이라지만 계속 오타가 나는 것은 유쾌하진 않다.

가장 깨끗해야 할 어딘가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눈뜨고 지켜보는 일이 몸을 축나게 한다. 진리의 상아탑에서 학자들은 돈독이 올라 어린 것들의 골수를 뽑아 먹는다. 자기의 회춘을 위해 어린 계집아이를 방으로 들이는 노인의 역한 체취를 코를 갖다대고 맞는 기분이다. 속이 메스껍다. 몸을 파는 사람과 몸을 사는 사람은 서로 문제의식이 없는데 매춘은 나쁜 것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봤자 해결이 되겠는가. 관심을 꺼야한다. 오지랖을 버리고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참견해선 안된다. 매춘굴 입구에 앉아 수행을 하겠다는 꼴이다. 말도 안된다. 빨리 발을 빼는 수 밖에.

완벽한 곳은 없다는걸 너무 잘 알잖아. 어디든 퀴퀴하고 역겨운 구석은 다 있다. 그게 싫으면 산으로 들어가 바위를 쳐다 보고 사는 수 밖에. 그래도 바위에 낀 이끼가 보이면 아 너도 썩었구나 할 거면서. 적응해야 한다. 역겨움과 더러움에 적응해야 한다. 신앙이 없으면 양심으로 살면 된다고 하는데 그게 더 어려운 일이지 않은가.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갈 것 아니면 무뎌져야 한다. 적응하라 적응하라 적응하라. 오지랖은 버리고 참견과 간섭도 나의 몫이 아니다. 적응하라.

적당히 미술관이나 다니고 박물관이나 다니고 유유자적 창해일속으로 세상에 묻혀 버리자. 역하지만 별 수 없다. 능력 안되면 부딪히지 마라. 참는게 아니다. 능력이 안되는거다. 조용히 입닥치고 있다가 청문회에서 낭만을 찾거든 비웃으면 그만인 것을. 견리사의 하라 했더니 견리사욕 하겠다는 인간과 무슨 얘기를 더 하겠는가. 견리사욕 하려거든 지족하라 했어야 했는데. 지족하지 못하면 패가망신할것이라 했으면 마음이 편했겠나. 그냥 입닥치고 조용히 살자. 죽은듯이. 죽은듯이.

찬바람 불면 정을 떼고 떠날 준비를 하자. 월기는 꼬박꼬박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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