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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한 판

Pulmaya 머릿속 2012. 4. 26. 21:42
마트에서 삼십개짜리 계란 한 판 사서 계란 위로 다시 계란판 덮고 가는 노끈으로 동동 묶어서 조심스레 들고 집에 와서 식탁 위에 올려 두고 한 숨 돌리고 냉장고 문 열고 하나씩 하나씩 꺼내 집어 넣다보면, 그 중에 꼭 한 두 알은 살짝 금이 가 있거나 무언가에 콕 찍혀 빼꼼히 구멍이 뚫려 있거나 심지어는 반틈이 쫙 갈라져 당장 계란후라이라도 해먹지 않으면 여엉 버리게 생긴 것도 있고 어떤 날은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손에 힘이 툭 빠져버려 그대로 바닥에 탁 떨어뜨려 깨먹는 날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 요놈의 남은 계란들 죄다 못쓰겠구나'하고 내다버리는 법은 없지.

이제 다시 새로운 판에 계란 한 알 조심스레 얹으며 다짐한다 어떤 해는 맥반석 계란이 어떤 해는 훈제란이 어떤 해는 요즘은 보기도 힘든 메추리알이 또 어떤 해는 어디서 왔는지 출처도 알 수 없는 오리알이 떡 하니 올라가 앉아 있을지도 모를 또 하나의 새로운 계란 한 판을 조심스레 모시고 가며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이니까, 나는 그래도 나를 섬겨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내 나이 꽉 찬 만 서른 하고도 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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