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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Pulmaya 사는이야기 2012. 6. 24. 21:54

세상 참 좋아졌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기차 안에서도 쓱싹쓱싹 이것저것 할 수 있는게 많아졌다. 서울에서 기차로 한시간 반이 조금 더 걸리는 거리에 새로운 일자리와 보금자리를 마련한 지 열흘만에 서울에 다니러 왔다 귀가하는 길이다.

 

예전에는 블로그에 글 한 번 쓰려고 마음먹고 나서도 노트북 켜고 키보드위에 가지런히 손가락 올려놓고 심호흡도 좀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워낙 스마트한 세상이다 보니 글을 쓰는 시간보다 글쓰기를 마음먹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듯 하다.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워가며 쓰는 글의 무게와, 컴퓨터로 쓰는 글의 무게가 다르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 '폰'으로 글을 쓰니 이런 글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가볍게 쓰되 가벼운 글은 쓰지말아야 할텐데.

 

어느 시점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 속에 있는 것 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한 오년 전 까지만 해도 나는 사람들 속에 있지 않으면 외로워 죽을 것 같던 사람이었다. 왜 그렇게 심하게 외로움을 탔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준비되지 않은' 독립때문이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04년 여름,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후 복학할 무렵에 나는 처음으로 독립이란걸 하게 됐다. 어학연수 중 갑자기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집이 몽땅 지방으로 이사를 가버린 탓이었다. 대학 생활에서 자취와 독립이 반드시 고된 일만을 아니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독립할 몸과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된 채 '버려지듯' 혼자 살아야 했다. 비관적인 집안 상황과 낯선 환경, 독립과 동시에 내 생활에 소요되는 모든 경제적 책임까지 감당해야 하는 조건에서의 독립. 학번나이로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너무 힘들었고 독립을 한다는 해방감보다는 좌절감과 우울감만 확대해석되어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그때부터는 모든게 전쟁이었다. 먹고 마시고 돌아다니고 씻고 빨래하고 심지어 싸는 것에도 비용이 들어갔다. 전기, 가스, 수도, 건물 관리비 어느 것 하나 '돈' 아닌 것이 없었다. 대학교 2학년 짜리가 학교다니면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벌어봤자 얼마나 벌었겠는가. 연명하고 생존하는 것 때문에 죽을만치 힘들었다. 학교 다니고, 아르바이트하고, 집에 들어와 자고 다시 일어나서 학교 가고, 아르바이트 하고...... 정말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었던 때였다. 그러고 나서 참 외로움을 많이 탔던 것 같다. 그래서 혼자 있는게 너무 힘들고 버겁고 공포스럽기까지 해서 늘 사람 많은데를 찾아다녔던 것 같다. 그렇게 한 학기 반 년 가까이를 혼자 살다 일년은 학교 선배와 같이 살고 난 후 일 년 반 만에 집이 서울로 이사와서 다시 가정의 품으로 돌아갔다. 일 년 반만에 살림을 합치고 나니 어느새 독립에 적응해버린 나머지 참으로 불편한 것들이 많았다. 날개죽지에 붙어있던 투명한 날개가 툭- 꺾여버린 느낌이랄까-

 

이제 육년 만에 다시 독립을 했다. 이번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고 학교도 다니지 않는다. 집에 혼자 있어도 더 이상 외롭거나 무섭거나 우울하지도 않다. 내 인생에서 마지막 독거라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해보고-그래봤자 먹고 싶은 거 맘대로 해먹기, TV 채널 내맘대로 골라보기 정도- 자유를 누리며 지내련다. Carpe diem!

 

-나랑 같이 사는 식구들. 왼쪽 치즈양. 오른쪽 이름 아직 못지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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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m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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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

Pulmaya 사는이야기 2012. 6. 24. 15:56
동거녀 치즈양
사랑해요♥

모바일 페이지에서 사진이 올라가는지 실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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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m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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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질문을 한가지 받았다.

"너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 가슴, 배 중에 어디가 아프니?"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눈이 빠질 것 같다고 대답했다.

물어본 사람도 잠시 고민하다가 눈은 머리에 가까우니 그냥 머리라고 생각하자며 설명해주었다.

스트레스 받으면 머리가 아픈 사람은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되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 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운 사람은 감정이나 마음을 어쩌지 못하면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 했다.

배가 아픈 사람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에 문제가 생길 때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 했다.

그러면서 내가 머리가 아픈 유형의 사람이라는 것이 다소 의외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따져보니 스트레스 받아서 두통이 왔던 기억은 크게 없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별다른 문제 없다 싶으면 받아들이는 편이었던 것 같다.

내 사람이 아닌 그가 보고싶었던 옛날에는 가슴이 미어졌던 적이 있었다.

명치 끝에 송곳이 하나 쑤욱 밀고 들어오듯이 기절할 것 같다가 심장이 커터칼로 난도질 당하는 것 같다가 종국에는 갈비뼈들이 사방으로 뚫고 나갈 기세였다. 많이 아팠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최근에는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뭘 먹어도 장이 꾸굴거리고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드물게는 두개골 속의 뇌수들이 터져나가는 듯 하면서 갈비뼈도 삐그덕거리고 참새 눈곱만큼 먹었던 걸 다 게워낸 적도 있긴하다.
사람으로 할 짓이 못되었다.

이제는 머리 가슴 배 중 어디가 좀 불편해도 어렴풋이 짐작하며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을것 같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준비하자.

근데 눈은 왜 빠질 것 같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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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m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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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남의 나라에 도착한지 딱 일주일.

30년 인생에서 참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폰이 고장나는 바람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 속이 하얗게 리셋되는 경험도 해봤고...

오기전에 생각하고 왔던 계획들은 판판이 다 깨지고,

또 생각치도 않았던 새로운 기회도 눈 앞에 턱 떨어졌습니다.



모든 문제의 본질은 상황과 환경이 아닌, '나의 태도'였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그저 '주변인'으로 살고 싶다는 어줍잖고 같잖은 마음가짐이 문제였던거죠.

아무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았고 (심지어는 내 자신조차도)

눈치 슬슬 보다가 얹혀가고 싶어했고

좋은 것만 취하고 싫은 건 죽어도 싫다고 버티고

과정없이 결과만 있기를 바라고

일일이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을 민망한 치부들과 마주하고 나니 괴로움은 잠시고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군더더기와 가지를 치고나니 모든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도망다니지 말고, 정면승부 할 것'

가진 것을 모두 탕진하고서야 알게 되었지만 가진 것이 별로 없었으니 참 다행입니다.

조금 더 묵묵하고, 무거워지고, 신중해지고, 차분해져서 돌아가겠습니다.

'깨닫기만 하면 바뀌는데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낮아지면 평평해지고, 평평해지면 넓어진다'

이제야 무슨 뜻인지 조금 알겠습니다.

진심으로, 다들 너무 보고싶습니다.





# Today's SPCL
우연한 기회에 네팔에서 썼던 글을 이제서야 올려봅니다.

-네팔에서의 석 달

네팔에 다시 온 지 오늘로 꽉 찬 석 달이 됐다. 작년 이맘때 얼떨결에 보름 여행을 하는 동안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에 한국인 부부를 만났는데, 참으로도 묘한 인연이 되어 그 집은 아예 네팔에 터를 잡고 살고, 나도 덩달아 조카님들 겨울 방학 무렵 다시 네팔에 오게 되었다. 언니와 형부가 한국에 계신 동안 애 셋의 돌봄을 받으며 혹독한 겨울을 봄날처럼 보내는 중이다.

네팔이라는 나라는 외국인 영주권이 없어 여행객이나 교민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라 한다. 1년에 2만 명에 가까운 여행객에 비해 터를 잡고 살거나 봉사활동으로 장기 체류하는 사람은 500이 조금 안되는데, 난 이도저도 아닌 주변인이나 다름없다. 작년 봄, 잘 다니던 회사까지 때려치고 무슨 굼벵이기운이 들어 집에서 뒹굴거리며 잉여의 여왕이 되기를 갈망하던 처지나 지금의 처지나 이도저도 아니긴 매 한가지다.

사람 일이란 한 치 앞도 모른다더니 정말 내가 여기 네팔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한 살 더 먹게 될 줄이야. 여행자의 처지보다는 자연상태의 칩거백수에 가깝다보니 해외라 하더라도 크게 낯선것이 없고 이미 두 번째이니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것들이 더 많아진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스스로는 요즘 해외은둔형외톨이라 칭한다.)

그래도 생활 면면을 쪼개어 살펴 보자면, 3층집 옥상에 가끔 빨래 걷다 보면 저멀리 북쪽으로 산꼭대기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히말라야의 장관이 여기가 바로 네팔이라는걸 확인시켜준다는 정도? 또 하나는 아직 전기 사정이 열악해 해가 지고 정전이 되고 나면 골목길도 깜깜해져 바로 옆집 수퍼라도 갈라치면 손전등을 켜고 다녀야 할 정도인데, 그럴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정말 말그대로 별이 쏟아질 것 같다. 작년 안나푸르나 트레깅 중에 보았던 밤하늘은 빈 공간 보다 별이 더 많았었고, 여기 카트만두 밸리의 하늘은 그때와 비교해보면 상대도 안되겠지만 그래도 한국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여름 하늘 정도는 되니, 새삼 빛도 공해가 된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여행 왔을때는 문명의 손길이 다소 덜 탄 자연의 느낌이 마냥 좋았는데, 살아보니 참으로 고생스럽다. 여기 네팔은 아니지만 인도에 나와 있는 후배와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는데, '개판과 평화의 어중간함'이라는 표현을 듣고는 참 적나라하면서도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에 혼자 한참을 눈물나게 웃었다. 시스템은 우리 기준으로는 말도 안되게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집마다 알록달록 꽃도 키우고, 골목길에 멍멍이들이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모습과 현지인들의 시골 사람들같은 수더분함은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평온함이었다.

대부분의 전기는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데 건기인 요즘은 하루에 전기가 열여섯 시간씩 나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앞판을 열어야 볼 수 있는 커다란 배터리를 집에 놓고 전기가 들어올때마다 충전해 쓰는데, 그나마도 간당간당해지면 집안에 전등과 콘센트는 다 뽑고 오로지 무선인터넷만 켜놓은 채로 스마트폰을 쓰고 노트북을 쓰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우리나라같은 온돌 시설이 없어서 낮에도 집 안이 바깥보다 더 추운 단열이 거의 안되는 집들이 허다한데 겉모습은 인도나 홍콩식의 서양식 주택을 따라 지어 겉으로는 세련되고 이색적으로 보였지만 살아보니 창고에서 침낭 펴 놓고 오리털 내피 입고 들어가 자야하는 꼴이다. 이래서 살아봐야 아는가 보다. 여행자의 느낌과 생활인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도로는 우리와 반대로 자동차 좌측통행이다. 거기까진 괜찮은데, 도로의 반이 비포장이다! 여기는 그래도 나름 수도인데!!! 처음 와서는 좀 돌아다녀 보겠다고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 열심히 연습해서 끌고 나갔다가 비포장 도로 위를 한 30분 지나고는 하반신이 마비되는듯한 통증을 느끼고는 포기했다.

여기도 실업문제가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한낮에도 길가에는 체스나 마작같은 오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고 관광산업이 국가 수입 대부분을 충당하고 외국의 원조로 자동차 도로를 닦는 실정인데, 어떻게 다들 굶어 죽지는 않고 살까 생각했는데 도시인데도 집에서 닭키우고 텃밭에 채소 심어 가꾸는걸 보니 식량은 자급자족을 많이 하나보다. 우리 앞집은 청둥오리도 네마리나 있었는데 요즘 안보이는걸 봐서 잡아 먹은 모양이다. 나도 여기 와서 집에서 닭을 두마리나 길러서 순차적으로 잡아 먹었는데, 일단 잡기는 이웃집에다 비용을 지불하고 잡았지만 손질은 내 몫이었다. 암탉 뱃속에 아직 나오지 않은 달걀이 몇개씩 있는걸 태어나서 처음봤고, 본능적으로 모래주머니를 찾아 깨끗이 씻어서 구워 소금간에 찍어 먹으며 잠시 행복하다는 생각도 했다. 고기 값은 우리나라에 비해 싼 편이라 돼지고기 1kg에 우리돈 3천원정도인데, 뼈와 비계, 껍데기의 구분없이 무게로 달아서 팔고 있었다. 나도 한국에서는 엄마가 해주시는 밥 얻어 먹으며 곱게 자랐는데 여기와서 처음으로 식칼들고 돼지고기를 해부수준으로 난도질 해봤다. 한국에서는 정말 손쉽게 먹었던 단무지, 짜장소스, 팝콘을 원재료 단계에서부터 만들어 먹다보니 내 입에 들어갔던 수만가지 음식들이 어디로부터 왔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그리 손쉽게 먹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역시 고생을 좀 해봐야 배운다.

수십만명이나 된다는 신들이 벽에 조각된 사원이나 알록달록 그림을 그린 트럭같은 이국적인 풍경은 일찌감치 익숙해지고,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 문제의 고달픔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물론 옥상에서 보는 히말라야와 상쇄된다 하더라도 힘든건 힘들다.

그래도 한국이 좋으냐 여기가 좋으냐 이분법적으로 자문해보면 아직은 네팔이 좋다. 이따금 담을 넘어오는 이웃집의 향피우는 냄새는 생활에서 오는 피로를 씻어줄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편하게 해준다. 한국에서는 경험할 기회조차 없었던 전기부족과 깨끗한 물 부족은 약 30년 내 인생에 얼마나 불필요하게 지구자원을 낭비했던가 반성하게 한다. 또 스스로 일상생활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면서 매사에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수고에 참 편하게 살았다 싶다. 아직 고생을 덜했나보다. 정말 한국의 모든 것이 그립고 아쉬운 때가오면 미련없이 떠나겠지. 그러고 다시 한국에서의 일상에 적응하면 히말라야의 설경과 늘어지게 낮잠자는 멍멍이를 그리워하겠지. 몸은 어느 곳에 있던 여행자의 마음으로 너그럽고 즐겁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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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m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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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티스토리 접속 못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주 잘되네요!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안됩니다;;;

일단 도착은 잘 했습니다.

근데 도착하자마자 폰이 고장나버렸어요 ㅠ_ㅠ

전화번호도 하나도 없고, 스마트폰 없으니 완전 바보됐네요..

혹시라도 트윗이나 페북통해 이 글 발견하시는 분은 멘션날리거나 댓글 다셔도 제가 못보고요;; 여기에 댓글 달아주시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집도 절도 일도 없지만 곧, 조만간 자리잡겠습니다.

지금 있는 곳은 청도시의 청양구라는 곳인데, L.A의 한인타운같은 곳으로 보시면 될듯 싶습니다.

간판에 한국말 엄청 많고요, 중국어 몰라도 미아 되지는 않을 정도인것 같아요.

어제는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함박눈이 펑펑 내리더라고요.

작년에 네팔가는 바람에 눈을 못봤는데 여기와서 눈을 봤네요.

오늘은 비옵니다.

이번 주 내로 정착하는게 목표구요.

아 그냥 머리도 복잡하고 손도 막 엉키는 것이 더 이상 쓰면 안되겠네요 켁켁

그럼 다들 건강히 즐겁게 지내시고요!


보고싶어요 다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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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인은 자신을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라 했지만, 나는 아무리 바람을 맞아도 상처받기만 했다.

내 주변엔 유난히도 착하고 순박한 사람이 많았다.

나는 그저 내가 인복을 타고 났나보다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내 성격이 하도 지랄맞아 왠만한 인품으로는 나를 품어 안지 못하고 달아나 버린 탓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잘나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줄 알고 온갖 요란을 떨며 깝치고 까불었다.

한밤중에 자다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 생각해보니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 금쪽같은 사람들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나를 키운건 하늘같고 땅같은 사람들이었고 덕분에 아직도 여전히 조금씩 자라고 있다.

두려운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주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내 자신이다.
두 눈알을 새까맣게 뜨고 앉아 사람구실 제대로 못하고 밥만 축내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요물이다..

자다 일어나 골때리는 짓은 혼자 다한다. 기가 막혀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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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maya 사는이야기 2011. 7. 11. 17:57

지난 수요일 글쓰기 시간의 주제는 '몸'이었다.
나는 사정이 있어 수업을 한시간이나 지각하였고, 덕분에 함께보는 영상도 못보고, 글도 못쓰고 앉아서 다른 수강생들이 쓴 글을 듣다가 왔다.
수업이 끝난 후 파격적인 폭탄머리를 한 선생님이 덜컥 두 손으로 팔을 부여 잡으며 꼭 글을 쓰라 하셨는데, 마치 '다음 주까지 안쓰면 절대 안되!!' 라고 말씀하시는 듯 했다. 험험. 그럼... 나는 절대 자발적이지 않은 인간이니까.




<이 이야기는 머릿 속어딘가에 있는 실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 곳은 낮에는 햇살이 따갑고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했으며, 밤에는 추웠다.

나 같은 인간은 아침저녁으로 한기를 느끼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손발을 싹싹 비벼가며 추위를 달래야 했다.

챙겨간 수면양말을 신고서도 발은 시렸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장갑은 끼고 있었다.

살짝 잠이 들라치면 코끝이 시려 잠을 깨고, 그때부터는 머리 정수리부터 내려오는 냉기에 환장한다.

이가 악물리고 턱이 오돌오돌 떨리는 유난히 추운 그 곳의 밤.


낮에는 또 정수리끝으로 해가 떨어져 머리가 딩할 정도로 덥고 찐다.

특히 산에서 보낸 8일은 극단적인 추위와 더위가 교차했다.


내 손발을 내가 잘라내고 싶다는 잔인한 생각마저 들었던 그 때. 

그 곳에서 나와 또옥같은 인간을 하나 발견한다.

나처럼 손발이 시려워 한눈에 봐도 냉기에 대한 두려움이 얼굴에 묻어나는 인간. 신기한 일이다.

나는 어른스럽게 나보다 더 가련한 인간에게 머플러며, 여분의 수면양말이며, 심지어는 하나밖에 없는 오리털 자켓까지 기꺼이 대여한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인간보다 내가 더 추웠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감각이란 참 오묘한 것이다.

사실 손발이 유난히 시려운 것 빼고는 나와 같을 것은 없는 인간이었다.

키는 나보다 적어도 20cm 이상 컸을 것이고,

어깨도 나보다 배는 넓었을 것이고,

손발의 면적도 나보다 넓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부처님처럼 허리가 길어 앉아 있는 것이 돋보이는 그런 인간이었다.

두 눈도 길고 가늘게 갈라졌고, 얼굴도 요즘 아이들처럼 뾰족하지 않은 것이 영락없는 부처님의 모습이다.

또 모르지. 내가 보고싶은 대로 보고, 기억하고 싶은대로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8일만에 무사히 산에서 내려와 그 다음날은 완전히 털썩 풀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짐 하나 짊어지지 않고, 머리칼도 다 날려버린 채 가장 가벼운 아침과 오전을 만끽한다.



짐을 챙기다 문득 중요한 물건이 하나 없어졌음을 발견했다.

이 곳에서는 밤에 돌아댕기려면 꼬옥 필요한 물건. 헤드랜턴.

도대체 어디로 간걸까.

이런저런 여차저차한 이유로 그 얄미운 인간의 소행이 틀림없음을 확신한다.


이미 빈털털이가 된 상태라 새로 사기에는 고가의 물건이니.... 찾으러 갈 수 밖에..



그 인간의 방은 1층이지만 창문으로 짜악- 볕이 따뜻하게 들어온다.

2층이었던 내 방보다 볕이 잘 드는 마음에 드는 방이다.



며칠동안의 산생활로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여름도 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닌 어느 날 오후.

나는 잠시 햇볕을 쬐기로 한다.

두런두런 별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몸도 마음도 지쳤으니 서서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어설프다.



두 인간은 각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누워서 휴식을 취한다.

절대 에로틱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은 그 너저분함이란......


이 두 인간의 공통점은 손발이 차다는 거였지.

손을 잡는건 언제 어디서도 참 민망한 일이다.
 
그럴 일은 없다.


하지만 두 인간은 온기가 필요했고, 어쩌면 냄새가 날지도, 무좀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 발을 포개고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누워 휴식을 취한다.

다시 생각해봐도 절대 에로틱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은 상황이다.



마치 시계바늘과 같이 하나의 축으로 누워 있는 두 인간.

시계바늘도 한시간에 한번은 만나고 마니, 살짜쿵 돌다 한 번 쯤은 만나도 좋겠지.


째깍. 째깍. 시계바늘 소리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뛰는 심장.

쿵-
쿵-
쿵-
쿵-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엄마 품에 안긴 어린 아이처럼 올곧이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얼음장같은 손가락은 심장박동을 따라 까딱, 까딱, 까딱, 까딱.


이런 건전한 휴식은 참으로 처음이다. 편안하다.

그 무덤덤한 인간의 손가락은 이미 말라 비틀어질대로 말라버린 나의 갈비뼈에 가지런히 올라가 계이름을 배우듯 까딱까딱 한다.

'신기하다, 몸에 살이 하나도 없네'

그래. 나도 신기하다. 명치 끝까지 말라버려 이제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종로바닥을 싸돌아다녀도 아무런 부끄럼도 없을 법하게 변형된 내 몸이 나도 신기하다.


문득, 생각이 많아 머리가 뜨거우면 손발이 차다는 어느 선배님의 말씀이 떠올라 대략 한달은 넘게 다듬지 않은 머리칼 속으로 손윽 쓰윽 밀어 넣는다.

역시 따뜻하다. 머리칼은 옷감과는 다른 온기가 있다. 하지만 생각이 많아서 머리가 뜨거운지, 원래 머리는 따뜻한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이런저런 여차저차한 이유로 그냥 입맛을 잃어버렸고,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공연히 상심했다.



감각은 기억을 만들고, 기억은 고통을 만들고, 고통은 있는 그대로 괴롭다.

나는 내 몸이 감각하는 것을 증오한다. 혐오한다.

눈에 보이지도, 지금 현재 존재하지 않는 그 개같은 감각이 가증스럽다.

지금의 이 부정적인 느낌은 아쉬움일까. 허무함일까. 소외감일까. 뭘까.

이제는 그냥 휘익, 날라가버려라. 휘익.



<있었을지도 없었을지도 모르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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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m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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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부끄러운 여자였다.

동시에 아주 뻔뻔한 여자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뭘 모르는 여자'였다.



어떤 순간에도 낯빛하나 변하지 않고 뭔가를 뚝딱뚝딱 해내기도 했고,

남들 아무도 못하는 일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풀지못하는 숙제같은 것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욕감'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수치심'이라 부르기도 했다.


뻔뻔한 여자라고 그런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묻고 싶었다.

같은 상황, 같은 시간대에 일어난 일이

너 같은 놈에게는 단순히 '친목'을 도모하기 위함이라는데

어째서 난 굴욕적인가?


그들은 답을 주지 못했다.

그냥 몰랐을 뿐이라 했다.


그러나 내 보기엔 '알고도' 그러는 놈이 더 많았다.



너는 유쾌했다.
나는 불쾌했다.

너는 기분이 좋았다.
나는 기분이 더러웠다.

너는 즐거웠다.
나는 짜증이 났다.


어째서 같은 시간 같은 상황에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인가.



아직도, 여전히 그들은 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들끼리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묘한 일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더럽다.

가끔은 자기네들끼리도 그건 너무 심했다고 설친다.

그러면서도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정도의 차이와 다양한 방식으로 내 기분을 더럽게 한다.

어쩌면 죽는날까지 절대 이해하지 못하고, 납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수치스러운게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여인은 도망을 갔다.

어떤 여인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어떤 여인은 자기가 부서져라 싸웠다.

어떤 여인은 그저 울기만 했다.

어떤 여인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거둬들였다.

어떤 여인은 그냥 아무 내색안했다.

어떤 여인은 다른 여인들과 모여 앉아 뒷담화를 했다.

어떤 여인은 또 다른 여인을 위로했다.

어떤 여인은 또 다른 여인을 대신해 욕을 해주거나 싸대기를 날려줬다.

누가 가장 현명한가.



이제 다시 묻는다.

너는 정말 모르냐, 진짜 모르냐,


사실 묻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어떤 방식으로 알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나는 이제 모두가 알도록 할 것이다.
누구라도 용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그래서 나를 내려놓는다.

나를 내려놓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 '연약함, 두려움, 불안감'을 내려 놓는 것이다.

가장 이성적으로,
가장 논리적으로,
가장 여유롭게,
가장 자유롭게.

나는 이제 그 어떤 두려움과 공포, 불안감(사실 따지고 보면 동일한 요소일지도 모르는)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나는 도망가지 않는다.

나는 당당하다.

그래서 나는 강하다.

이제 시작이다. 쓰읍





-환장하게 더운 낮, 환장할 일 하나 툭툭 털어버린 여자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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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Pulmaya 사는이야기 2011. 6. 15. 20:46
이 새벽에 뜬금없이- 그냥 막 우긴다.


누가 뭐래도 네 뒷모습만큼은 내꺼.

내 기억 속 실루엣, 입체감, 원근감

그래서 그 뒷모습만큼은 내꺼.
누가 뭐래도 내꺼.


아무한테도 줄 수 없고 내가 놓지 않는 한 영원히 내 소유.

우습구나 원..


-2011. 6. 11 04:26 from 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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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m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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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엿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는 사람이니까,

술도 될 수 없고

담배도 될 수 없고

젓가락도 될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습니다.

다행입니다

생각보다 빨리 알아버려서요^^

이제는 그 누군가에게,

아름답고 향기나는 소중한 '사람' 이 될래요!

되고싶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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