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기억해달라.

 

황량한 들판에 바람따라 누웠다 꺾여버려 일어나지 못한 풀도 좀 기억해주고

 

아스팔트 갈라진 틈을 비집고 오롯이 꽃으로 피어나지 못 한 채 씨앗으로 생명을 마감한 들꽃도 좀 기억해주고

 

태풍 거센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버려 환경미화원 분들에게 민폐끼친 플라타너스 낙엽도 기억해주고

 

뙤약볕에 말라 비틀어진 저기 어디 논두렁에 웃자란 콩이파리도 좀 기억해달라.

 

 

가뜩이나 별 볼일 없는 것도 서러운데

 

약해도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것들에게만 주목하여 적자생존이 진리라고 쳐도

 

살아남은 것보다 고꾸라진 것들이 훨씬 많다는 것도 좀 기억해달라.

 

 

 

왜 나자빠졌냐고 다그치지만 말고

 

그것밖에 안되냐고 차갑게 쏘아보지만 말고

 

더 잘해야 한다고 채찍질하지도 말고

 

웃는 얼굴로 힘내라고 등 떠밀지도 말고

 

그냥 그런 볼품없고 허망한 것도 있다고 인정해주라.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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