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냄새

막 지어낸 이야기 2012. 8. 14. 14:59

'귤 냄새'

 

진짜 귤 냄새인지 귤 냄새 같은 냄새인지 내 코로는 도저히 맡아 낼 수 없는 그 냄새를 대신 맡아주었던 네 이름과 얼굴은 사라진 지 오래인데 귤. 냄. 새. 이 세 마디는 영혼처럼 살아남아 귓바퀴 뒤에 숨어 있다가 심심하면 한 번씩 찾아와서 귤. 냄. 새. 라고 속삭이고는 숨어버린다.

 

때는 여름이었고 귤이 제 철이 아니었으니 진짜 귤 냄새는 아니었을 것이고 귤 냄새 같은 냄새였는지 비스무레한 냄새였는지. 또 진짜 귤 냄새는 어떤 냄새인지 설명해 본 적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앞으로도 귤 냄새는 이런 거라며 설명할 일도 없을텐데 가끔 그렇게 숨어있다 나타난 그림자처럼 귤. 냄. 새. 라는 울림이 느껴지면 귤 냄새는 어떤 냄새였던가 혹은 어떤 냄새일까 일부러 틈을 내어 생각해본다.

 

이 세상에 귤. 냄. 새.  세 마디 내어 놓은 너도 기억하지 못할 다 부질없는 기억의 잔챙이. 정수리를 지릿지릿 짓누르는 계절감도 무시한 채 양쪽 어깨 위로 동-동 떠다니는 귤냄새귤냄새귤냄새

 

올 겨울에는 아작 씹어서 꿀떡 삼켜버려야지.

 

셍각만 해도 이가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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