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이 게으르고 굼뜨며, 필받을때만 움직이는 인간 Pulmaya의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릴레이 독후감 그 두번째 편입니다. 앞으로 한 번이 더 남았구요, 오늘 안쓰면 또 언제를 기약할지 몰라 일단 쓰고 봅니다. 답답해서 복장이 터질것 같으신 분들 몇분 되진 않으실테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십시오..-_->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2011.6 도서출판 이파르 / 백소영 엄기호 외 지음) 이젠 익숙해져버린 잉여의 모습들..

 책 한 권 읽는데 한도끝도 없는 Pulmaya의 릴레이 독후감 그 두 번째 편입니다.
이번 편은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제 2부 저항 하나 - 제도에 흠집내기 편입니다.

제 2부는 총 다섯 편의 글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의 패러디 문화, 잉여짓 또는 잠재적 혁명성?_백소영
너희가 병맛을 아느냐? 웰컴 투 더 <이말년 월드>_김수환
학생들과 무슨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백에서 증언으로의 전환_엄기호
김예슬 선언에 나타난 엑소시즘 지구화 시대의 시장 귀신 내몰기_구미정
청(소)년, 그리고 몰락의 정치 홍대 앞 두리반과 청(소)년 집합행동_김강기명

제가 생각하는 각각의 글은 2010년에서 2011년을 아우르는 20-30대 청년들의 문화 및 세대 규정의 단편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썰을 풀기에 앞서, 다섯 편의 글의 구성이 병렬 형식이라는 점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크게 부담감을 주지 않았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엄기호 선생의 글은 나머지 네 편의 글과 성격이 조금 다르지 않았는가 생각했다는 점을 밝히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2부의 소제목이 '저항'이라는 점과 그 부제목이 '제도에 흠집내기'라는 점을 바탕으로 하여 책을 조목조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독후감인데 책 내용은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패러디가 아닌 것이 어디있겠느냐만은...
제 2부의 앞부분의 두 편의 글은 패러디 문화에서 엿볼 수 있는 최근의 청(소)년 문화에 대해 조목조목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백소영 선생의 글은 '성균관 스캔들'을 중심으로 한 다종다양한 패러디 창작물을 다소 길게 소개하였고, 두 번째 김수환 선생의 글에서는 '이말년'작가의 작품이 모 포털사이트에 등재되는 과정을 살피며 청(소)년 문화를 조망하였습니다. 

 두 글에서 초점을 맞춘 지점은 바로 '패러디'라는 점인데요, (사족 : 이 책이 발표된 시기가 2011년 6월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 시기가 조금 더 늦어졌다면 아마도 '나는 꼼수다'까지 분석한 글도 들어갔을 듯 싶습니다.)

사실 패러디가 청(소)년 문화를 '점령'해 버린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도 아니고, 제 기억만 거슬러 올라가도 그 역사가 꽤 오래된 문화 양식이라는 점에서 그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의의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초중고딩 시절을 아울러 무슨 장기자랑이다, 조별 발표다 하는 내용들의 대부분은 잘나가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본따 발표를 하고, 인기 대중가수의 노래와 춤을 그대로 재현해내던 나와 우리 세대의 놀이 문화를 떠올려 볼때, 사실 대부분의 지금의 2-30대 청(소)년은 패러디 혹은 카피에 굉장히 익숙한 세대지 않나 싶은거죠.

우리는 전혀 창조적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젖먹던 힘을 다해 만들어 놓은 것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조금 변형시켜 집단 내부의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각색하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싶어요.

대학에 들어왔다고 별로 달라질건 없었습니다. 여전히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문화속에 놀고, 먹고, 마시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기발하거나 창조적인 면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학교 다닐때는 나름 노래동아리도 하고, 이것저것 공연도 해보고,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그 노래에 맞는 몸짓도 만들어보고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아 난 정말 창조적 인간이 아닌가봐'하는 불편한 진실이었죠.

그래서 목마르게 찾아대던 것이 바로 '인디문화'였는데요, 정말 못됐게도 상상을 초월하는 자본력으로 탄생한 대중상업문화에 이미 깊게 몸과 마음을 푸욱 담궈버린 상태라 들어도 들어도 갈증만 느껴지는 서브-컬쳐 매니아가 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인디밴드와 예술가들의 역량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썩어 문드러질대로 문드러진 저의 저급한 취향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정말 내 취향에 꼬옥 맞는 아티스트를 만나기 왜 그렇게 어려운 건지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지금의 2-30대는 슬프게도, 비극적이게도, 2011년 대한민국의 대중문화 생산자도 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입니다. 창조적이고 기발할 능력과 기회를 거세당한채 이 모진 대한민국 땅에서 적어도 20년을 살면서, 깔짝깔짝 패러디 정도 하는 데에 그 창조력을 쓰고 있다는 점이 슬픈 현실이라는 거죠.

졸업을 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어느 분야에서든 나의 권한을 가지고 무언가 역할을 하기엔 아직 어리고, 그렇다고 돈걱정, 미래걱정 하지 않으며 어디엔가 혼신을 다해 열정을 쏟아붓기엔 이미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버린 세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는 그 촘촘하게 거대해져버린 이 사회의 틈을 빠져나갈 수도 없게 되어버린 세대. 이 가엽고 측은한 우리 세대의 상징을 네 번째 글에서 구미정 선생은 '고시원, 편의점, 피시방'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모두가 김예슬이 되면 '소는 누가 키우나?'
개인적으로는 제 2부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글이 바로 네 번째 글 구미정 선생의 <김예슬 선언에 나타난 엑소시즘 지구화 시대의 시장 귀신 내몰기>였습니다.

2010년 3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던 김예슬양이 대자보 한 장 달랑 남겨놓고 학교에게 이별을 고했던 이른바 '김예슬 선언'. 1년 반이 지난 지금 늘 다른 역사적 사건사고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흘러가 버린 김예슬 선언은 2010년 2월 졸업생이었던 저에게도 어느 정도 심리적 동요를 안겨 주었습니다.

책 속의 누구 말마따나, '고려대 프리미엄'이 작용하여 그 당시에는 작지 않은 파장을 던졌던 김예슬양.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저와 같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예비 잉여들에게 쾌감보다는 허탈함을 주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대학 타이틀을 집어 던지고, 누군가는 아예 대한민국을 탈출하고, 누구는 어디서 시험공부에 매진하며, 이력서를 수십개 쓰고, 누구는 요행히도 안정적인 직장에 둥지를 틀어 ㅅㅂㅅㅂ 하며 야근을 하면서도 남들 취직 못하는데 취직한 게 어디냐며 위안을 삼고...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던지간에, 지금의 우리 세대는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는 사실. 너무 과한가요? 하지만 전 이 말에 동의했습니다.
 "욕망은 언제나 타자의 욕망이다"-자크 라캉(책 165쪽에서 재인용)

나의 꿈은 정말 올곧이 나의 꿈인걸까?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되려면?
이건 철저히 저의 생각입니다. 나이 먹어서도 정신 똑바로 박혀 있지 않으면 꼰대, 존경할만하면 어른.
저는 나이 서른을 먹도록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음, 나는 멋진 어른이야.'라고 생각이 들었던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철이 없어서 그런걸까요? 하지만 제 친구들과의 이야기에서도 종종 등장하시는 '어른'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는 될 수 없는 존재인것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어른'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인 다섯번째 글 김강기명 선생의 <청(소)년, 그리고 몰락의 정치 홍대 두리반과 청(소)년의 집합행동>편에는 어른도, 꼰대도 아닌 제 3의 인간형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자유의지로 행동합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도 있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반말을 합니다.
그들은 서로 맞담배를 태웁니다.
그들의 관계는 대한민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평등한 관계입니다.

그들은 두리반 뿐만아니라 기륭전자 파업현장, 용산 철거민 투쟁의 현장에도 결합합니다.
그들은 '반상회'라는 제도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그 결과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들은 홍대 앞 두리반 칼국수집의 이전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으며, 두리반 문화라는 새로운 형식의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홍대 앞에서 조금은 변두리인 동교동 두리반은 지난 2010년 철거 투쟁과 인디밴드 문화가 적절히 섞여 이루어진 독특한 문화 현상의 아이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1년 1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추모공연에 스무개가 넘는 공간과 100개가 넘는 인디밴드들이 함께 했던 것과 더불어 2010년에서 2011년은 인디문화에서 중요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문화는 여전히 대중문화가 아닌 인디문화로 남아 있으며, 그 저변이 확대되어 가는데에 경제적 공간적 어려움이 존재하며, 한때 홍대를 들끓게 했던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 밤의 클럽데이도 막을 내리고, 이런 저런 사실들이 '아 대한민국에서 예술 해먹기는 정말 어렵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해줍니다.

이야기가 조금 돌고 도는데요, 짤막하게 정리한번 하고 가겠습니다.
인간을 동물에서 벗어나게 했던 것은 채집, 수렵으로 비롯해서 농경, 목축 그리고 생산으로 이어진 '노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바로 '문화와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답게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지 못하며 노동에 생의 상당부분을 점령당하며, 예술을 하면 제대로된 어른 취급을 잘 안해주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요, 맨 마지막 글인 두리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이 글이 제 2부 '저항' 그것도 '제도에 흠집내기'에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저 씁쓸할 따름이라는 거죠.

인간으로 태어나서 먹고 살기에만도 빠듯한 대한민국의 현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려면 굶어 죽을 각오쯤은 최우선으로 해야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철부지로 욕을 들어먹어야 하는 현실. 어른되기 참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고백하다 증언하기 쉽지 않겠지만...
배치상으로는 세번째 글인 엄기호 선생의 <학생들과 무슨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백에서 증언으로의 전환>을 맨 마지막에 거론하는 것은 철저히 저 개인의 기호와 생각에 따른 것입니다.

엄기호 선생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와 덕성여대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는데요, 철저히 제 개인의 기호에 따라 선생이 말했던 글쓰기가 사회적 행위라는 것에 위안을 받았답니다. 지금 이렇게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잉여짓을 하면서, 손발 후덜덜 떨리게 자존감이 오그라 들고 있을 저를 위해 마치 위로를 건내기라도 하는 듯, '글쓰기는 사회적인 행위이다'라고 근엄한 목소리가 어디로부터 들려오는 것만 같거든요.

우리는 아주 땅꼬마 시절부터 그림일기, 그냥 일기로부터 시작해 사적 활동으로서의 글쓰기만을 경험해온 탓에, 막상 대입을 앞두고 논술 시험을 준비할라 치면 정말 그야말로 애간장이 다 녹아도 제대로 된 글 한번 못쓰고 좌절하다가, 대학에 입학해서는 별로 흥미도 없고 쓰고 싶지도 않은 레포트만 주구장창 써내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하루종일 보고서를 쓰다 하루를 마감하곤 하지요.

이렇게 소통을 하기 위한 글쓰기가 아닌 기능적 글쓰기에 치중해온 까닭에, 수많은 작가지망생이 있음에도 잘팔리는 책은 처세술과 성공에 관한 책 뿐이고(아니, 기능적 글쓰기와 처세술 관련 책이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신다면, 음.. 너무 비약이었긴 하지만 기능적 글쓰기라 함은 그냥 문화예술적 활동이 아닌 노동의 형식이라고 변명하고 말겠습니다. 흠), 정작 그것이 자신의 처지와도 맞지 않거니와,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지도 못하는데!! 갑자기 너무 흥분했지만, 흠흠 어쨌든 다시 이성적으로 돌아와서 하고 싶은 얘기를 마저 하자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글을 만나기도 매우 힘들뿐만아니라, 쓰기도 참 어려운 처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뭐 작가만 글을 써야 하는 법이 있나요? 여기서 아르헨티나 사람들 이야기 잠깐 하고 넘어갈게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직업이 두개래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 직업을 두가지 씩 이야기 한다고 해요.

"저는 음악을 하는 의사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웨이터입니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문화 예술활동과 노동활동을 분리시키지 않고 병행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려면 물론 법적으로 노동시간도 많이 줄어야 할거고, 야근도 안해야 할거고, 동네나 마을 근처에 문화 예술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줄 센터같은것도 필요하겠지요. 어쨌든, 요지는 인간이 동물같지 않으려면 노동을 해야겠지만, 인간다우려면 문화예술 활동이 꼬옥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인간이 노동을 더 많이 하도록 하기위해 꽤 많은 곳에 마약과 아편이 톡톡, 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성공'이라는 놈인데요.

사회 전반적으로, 기업 내부에서도 강도 높은 노동의 결실로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온갖 곳에 주렁주렁 달아놓은 듯 합니다.

아, 여기서 노동이라 함은, 생산직 노동만이 아니라 사무직, 서비스직을 포함하여, 노동자가 되한 예비 과정으로서의 각종 시험공부까지도 포함된 지극히 관념적인 개념임을 말씀드립니다.

이 '성공'이라는 놈은 개별 인간의 '욕심'과 결부되어 정말 열심히 일하는 인간을 곳곳에 만들어 놓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 '성공'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가던 인간들이 자칫 잘못하여 실패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개별 인간의 무능함을 탓하고 말죠. 입시에 실패한 수험생의 자살도, 취직을 못한 청년의 비관자살도, 사업 실패로 인한 일가족의 자살도.. 실패는 철저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지는 사회. 무섭습니다.

솔직히 저는 노동에 좀 질렸습니다. 천성이 놀기 좋아하는 인간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워커홀릭도 좀 있는 편이었는데요, 물론 지금은 백수지만 언젠가 다시 뼈빠지게 노동을 해야하겠지만요. 그래도, 모든 국민이 하루에 대여섯시간만 일하고 실업자를 줄이면 안되는 걸까요? 삐까뻔쩍한 고급차 안타더라도 조금 덜 일하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고, 좀 더 월급받으면 대한민국이 망하는 겁니까? 음... 늘 그렇듯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습니다.

-서로가 '공명'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엄기호 선생의 글에서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바로 '공명'이라는 말입니다.

'공명이란 진동수가 같은 물체가 한쪽이 울리면 다른 쪽이 같이 울리는 현상을 말한다.'(책 142쪽)
엄기호 선생은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과의 공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서로 사이에 '공명'은 필요할 것 같았어요.

누군가에게 다가서기 위해, 때로는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이 울면 함께 울어주고, 웃을때 같이 웃고. 흠... 말은 쉬운데 만만치 않네요 ^^


자세한 내용은 책을 꼭 읽어보시고요, 저는 또 부지런히, 열심히, 농땡이 치지 않고 책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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