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트는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독후감으로 천성이 굼뜨고 필받을때만 움직이는 제 개인의 특성과 책의 내용이 크게 3부로 나누어 지는 것을 감안하여 릴레이로 올리는 독후감 제 1편입니다. 되도록이면 민첩하게 읽고, 머리 굴리고, 글 쓰고 하겠습니다;; 다소 황당하시더라도 그냥 지켜봐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2011.6 도서출판 이파르 / 백소영 엄기호 외 지음), 표지하고는 참...

목이 디스크 걸려라 하고 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그야말로 청명한 가을날, 여느 때 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밤에는 자고 낮에는 깨어 있어야 집에서 쫒겨나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을 가진 백수 Pulmaya의 하드코어한 백수짓은 아침 먹고 내내 뒹굴거리다 드디어 책 한권을 손에 잡음으로써 잠시 소강상태를 보입니다.

누구라도 들으면 알만한 모 인터넷 언론 편집기자로 재직 중인 살이 퉁퉁하게 오른 선배가 점심을 사주며 이 책을 손에 쥐어준 지도 어언 두 달, 지금의 나의 처지와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이 책을 받고서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현실과 맞서는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하고 스스로 등을 토닥입니다.
 '너 잉여야.. 잉여 맞잖아.. 놀고 먹으려 들잖아.. 이 잉여인간아..'

그래, 나는 잉여다. 뭐 나만 잉여냐. 흥.

각설하고 이 포스트의 정체성이 릴레이 독후감인 만큼, 본분에 충실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는게 원래 전쟁이지 뭐, 전쟁터가 따로 있남?
오늘은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제 1부 '고통'에 대한 독후감입니다.

본권 13쪽에서 68쪽까지의 짤막한 분량의 내용으로 크게 두 편,
'잠재성을 잉여라 부르는 세상' (백소영)
'이것은 우리 잘못이 아냐!' (엄기호) 님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이 책을 읽게 되실 예비 독자분들을 위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비생산적인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개인적인 소회를 밝혀 본다면, 저의 30년 안팎의 짧은 인생의 약 15년을 훑을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초등학생에게 '쓰레기'라고 했던 선생, 당신은 누구인가?
백소영씨의 아이가 갓 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우리의 엽기발랄하신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쓰레기'라고 했다는 이야기로 글은 시작됩니다. 펑펑 우는 아이와 손발이 파르르 떨리는 엄마 백소영, 보지 않고도 상상만으로 그 충격적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거쳤을테고, 지금 그 선생님은 여전히 교편을 잡고 계실까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잉여'의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바로 내일, 나아가서는 1년, 길게보면 평생이 좌우되기도 하지요. 현실이 전쟁같은 것은 그것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불문율이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아장아장 걷고, 어린이집에 발을 들이며, 사회에 속하는 그 순간부터 전쟁은 시작됩니다.

#1 초등학생 과외이야기.
대학 재학시절 정말 '굶어죽지' 않기 위해 오만가지 잡다한 알바를 해제끼던 그 때는 '과외'만큼 달콤한 유혹이 없었습니다. 시급으로 치면 왠만한 정규직 신입사원의 초봉보다도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그 고소득 일자리는 대학생의 삶에 안정감을 주기도 했지만 거대한 '사교육'시장의 일원으로 전락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동시에 안겨 주었죠.

과외, 기간으로 따지자면 한 7년 넘게 한거 같아요. 처음에는 '돈'이 되는 고 3 과외를 하다가,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는 생각에 조금 수위를 낮춰 중학생 과외를 하다가, 수업 준비하는데 드는 시간도 아까워 조금 덜 받더라도 쉽게 가자는 생각에 초등학생 과외까지 마수를 뻗치게 됩니다. 이미 과외 중계업체의 VIP 회원이 되어버린 저는 들어오는 과외를 골라가며 하고, 수수료도 할인받는 인정받는 선생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하 초딩) 과외의 이점은, 수업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아이들의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수업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다는 점, 성적 결과물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제가 과외를 했던 몇몇 초딩 중 한 아이의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학교를 다니고,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하는 그 아이는 눈이 말똥말똥 한 것이 참으로 귀여웠습니다.
어머니의 요청사항은 '아이가 학원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니 학원 진도를 좀 뒤쫒아가게 지도편달 부탁한다'였습니다. 아, 이런 씁쓸하고도 눈물나는 이야기... 학원 진도를 못 따라가서 과외를 하다니!!!!

이 아이는 학교 공부외에도 학원을 두 개 (영어 전문학원과 교과목 보습학원), 체력 단련을 위한 검도장, 학습지 세 개(한자와 영어, 수학)에 제가 하는 과외까지.... 정말 노는 틈이 없는 우리의 불쌍한 초딩이었습니다..

저는 매주 2번, 한 번에 두 시간 이 아이와 놀아주면서, 가끔은 학원 숙제를 해주고, 가끔은 학습지를 풀어주고, 가끔은 전날 과음으로 졸다 애한테 들키고... 그렇게 아이의 빡빡한 하루 일과에서 마법사처럼 뭔가를 쓱싹쓱싹 해주는 과외 선생으로 한 4개월 정도 지냈습니다. 그것도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게 될 무렵 중등과외는 하지 않는다며 공손하게 머리 숙이고 나왔는데, 따지고 보면 고등학생 그 아이 누나 시험기간 과외까지 해줬으니, 상당히 오랜 기간 그 가정에 기생하며 목숨을 부지한 그야말로 잉여인간이었습니다.(어머님 굶어죽지 않게 보살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게 벌써 3-4년 정도 전의 일이니 그 아이도 아마 고등학생이 되었을 거고, 그때보다 더 빡빡한 하루 일과를 보내고 있겠지요.

아이고, 과외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요지는... 저의 잉여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 내지는 도움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구요, 그 희생과 도움은 불행히도 현대 대한민국의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가정이었다는것, 저의 어린 시절도 그랬지만 만능엔터테이너보다 훨씬 빡빡한 하루를 보내는 초딩과 유딩이 대한민국에 넘쳐나는 것이 매우 슬프다는 것, 과연 대한민국은 미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 뭐 여러저러 잡소리가 하고 싶었습니다.

이 늪과 같은 현실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다음 2, 3부로 넘어가야 나올까요?.
어쨌든 오늘은 우리의 현실인 '고통' 부분만을 읽었을 뿐입니다.


#2 이불공주 이야기
책 30쪽에 등장하는 이불공주 이야기 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꼭 읽어 보시고요, 21세기 학교에 사는 이불공주 이야기인데, 학교에까지 이불을 싸들고 와 잠을 자는 공주랍니다.

사실 20세기 후반의 학교에도 이와 닮은 공주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로 '쿠션공주'이야기인데요, 실제로 제가 그랬습니다.
중 1때부터 시작된 수마(睡魔)와의 싸움에서 일찌감치 패배한 저는 등교하자 마자 잠들어서, 수업시간에도 자고, 쉬는 시간에도 자고, 수업시간에 자다 걸려서 복도로 쫒겨나서 벌 서다가도 자고, 어떤 날은 1교시부터 잠들어 눈 뜨니 6교시가 끝나 있었던 날도 있었죠. 아, 공부는 언제 했냐구요? 당연히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서 했습니다. 학원에서 미리 배우고 학교에 가는데 학교가 재미있을리가 있나요.
어쨌든 정말 열심히 잤고, 급기야는 고 3때 생일선물로 반 친구들이 개뼈다귀 모양의 샛노란 쿠션을 선물해 주어 덕분에 고 3때는 아주 편하게 잤습니다. 4월에 선물받은 이 쿠션이 반 친구들의 품을 돌고 돌아 여름방학 무렵에는 시커먼 회색 쿠션이 되어있어 집에 빨려고 가져왔다가 엄마가 기겁을 하고 세탁기에 넣을 수 없다해서 손빨래를 했던 그 사랑스러운 쿠션... 졸업과 동시에 더 이상 회복 불능으로 눈물을 머금고 버렸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노란쿠션의 오마쥬는 저의 6년간의 중고딩 시절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이렇게 긴 쿠션 얘기는 또 뭐냐구요?

그 시절엔 그랬습니다. 선행학습으로 비롯된 학교공부에 대한 의욕상실, 맹목적인 획일화된 교육, 책에도 나오지만 반항보다 더 무서운 '무기력'... 이 거대한 알고리즘의 시작은 어디인가요? 학교교육의 부실인가요? 학교교육을 압도하는 사교육인가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무기력의 시작은 롤모델의 부재
저는 학창시절 되고 싶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 학년 초 써내는 장래희망에는 늘 부모님의 바램대로 '아나운서, 교수, 공무원'을 돌아가며 한 번 씩 써서 냈더랬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억울합니다. 누구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고, 누구는 가수가 되고 싶은데, 나는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흥미로운 것도 없어서 그렇게 긴 시간을 그림자처럼 보냈던 것일까?.. 늘 틀에 박힌 듯이 똑같은 학교-학원-집 사이클 속에서 되고 싶었던 것도, 평생을 걸고 싶었던 것도 없었던 나의 10대.. 지금 생각해보면 여전히 만나면 그때처럼 변함없는 친구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긴 터널을 지나 왔을까 싶을 따름입니다.

이제는 다행히도 대안학교도 생기고, 청소년들의 여러 다양한 활동들이 많이 열려 있고, 청소년 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서 조금 더 나아졌다는 생각도 들지만, 여전히 학교-학원-집-과외의 챗바퀴속에서 종종걸음질 하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2011년 대한민국은 과연 행복합니까?..


-이것은 우리 잘못이 아냐! 그래,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
1부의 두번째 이야기인 엄기호씨의 이야기에는 세 명의 젊은이가 등장합니다.
'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형석,
'집에서 나와 세상과 단절된' 한 학생,
'어른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민철

불과 이 세 명의 이야기로 2011년 대한민국의 젊은이 90% 이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게 참으로도 슬프지만, 저는 이 세명의 젊은이를 통해 저의 20대를 돌아보았습니다.

#1 굶어죽지 않기 위해 가난뱅이가 된 Pulmaya
대학 입학 후 중국 어학연수를 간 동안 집안 사정이 급격하게 나빠져버렸습니다.
군대에 간 남동생, 엄마도 아빠도, 나도 서로가 함께 살지 못한 채 정말 목숨을 연명해야 했었죠..

학자금대출로 쳐발라 가며 학교를 다니면서도 조금더 여유를 가져보겠다고 학교에서 주는 복지장학금(공부 잘해서 주는 거 말고, 가정 형편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는 장학금..)좀 받아보겠다고, 우리 집에 돈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건강보험료 납부 증명에, 내지도 않은 재산세 납부 증명에, 쓰는 사람도 피눈물을 펑펑 흘리고 읽는 사람도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자기 소개서에, 그렇게 그렇게 '나는 가난뱅이다'를 만천하에 증명하며 저 들판에 헉헉거리는 들고양이만도 못한 삶을 연명하면서, 왜 인간으로 태어나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한탄하고, 낳아준 부모마저도 원망했던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이렇게 덤덤하게 얘기하지만 혼자 벌어 학교도 다니고, 집도 얻어 살고, 목구멍에 풀칠도 하기 위해 죽도록 발버둥쳤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하루에 알바를 세탕뛰며 목구멍에 핏물 올라오도록 발버둥 쳤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학자금대출 1,500만원의 압박은 호흡을 가쁘게 합니다.

고교 졸업자의 80%가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원생 3만인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사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저보다 조금더 성적이 좋고 스펙이 좋아 대기업에 입사한 선배와 친구들도 나가 떨어지지 않게 끊임없이 발버둥쳐야하고, 대기업에 입사해도 끝까지 남는 사람은 다섯명 중 한명이라는 비공식 통계, 2011년 대한민국. 누구에게나 사는 건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언제쯤 끝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세 젊은이 중 한명인 민철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외환위기로 파탄난 가정, 스스로를 자책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님에게 당당히 얘기합니다.
'아니에요, 우리들 중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어요.'
맞아요. 잘못한거 없어요.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마세요.

나는 언제쯤 우리 엄마아빠에게 손을 내밀며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하고 싶었던 건 내 얘기일지 몰라서

책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1부를 보고나서 구구절절 하고 싶었던 것은 책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고통스러웠고, 누군가는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니까요.

앞으로 남은 2부와 3부는 '고통'을 넘어 '저항'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되도록이면 빨리 읽고, 생각하고, 쓰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2011. 9.15 Pulmaya 직찍 사진 <봐라, 태양이 구름에 가리니 더욱 빛나지 않더냐?> 삶도 그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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