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자

카테고리 없음 2024. 2. 18. 14:17

주동자

    김소연

장미꽃이 투신했습니다

담벼락 아래 쪼그려 앉아
유리처럼 깨진 꽃잎 조각을 줍습니다
모든 피부에는 무늬처럼 유서가 쓰여 있다던
태어나면서부터 그렇다던 어느 농부의 말을 떠올립니다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경멸합니다
나는 장미의 편입니다

장마전선 반대를 외치던
빗방울의 이중국적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
모두 다 아는 일이 될 때까지
빗방울은 줄기차게 창문을 두드릴 뿐입니다
창문의 바깥쪽이 그들의 처지였음을
누가 모를 수 있습니까

빗방울의 절규를 밤새 듣고서
가시만 남아버린 장미나무
빗방울의 인해전술을 지지한 흔적입니다

나는 절규의 편입니다
유서 없는 피부를 경멸합니다

쪼그려 앉아 죽어가는 피부를 만집니다

손톱 밑에 가시처럼 박히는 이 통증을
선물로 알고 가져갑니다
선물이 배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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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m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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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되지 않지만 내가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엉킨 실을 푸는 것인데

2004년 천안문 광장 바닥에 앉아 한참을 엉킨 연 줄을 풀어내고 다시 날렸을 때의 기억

털실
그냥 실
가느다란 목걸이 팔찌

가성비로는 따질 수 없지만 제대로 꽉꽉 엉켜버린 것들을 말끔하게 풀어내었을 때의 성취감 보람 개운함 너무 좋아서 엉킨 로프 풀기 게임을 하고 있으면 모든 근심걱정을 잊을 수 있어서 좋다. 모든 근심걱정을 잊을 수 있어서 엉킨 로프 풀기 게임을 하고 한 판 한 판 끝낼 때마다 성취감과 보람이 있고 개운해서 좋다. 매일매일 소소한 뿌듯함이 있어 다행이다. 내가 나의 일을 좋아하고 지키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깨지고 바닥을 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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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얼떨결에 다시 삐그덕거리며 가기 시작했지만 고르지도 않고 온전치도 못하다
어떤 날은 겉잡을 수 없이 날아가는 시간을 붙잡기 위해 밤새도록 낮인 것처럼 그대로 앉아 두 눈알을 끔뻑거리고 양손을 쉬지않고 몰아부치며 그대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러고는 시간과 한 판 이기고 연이틀은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잠을 보충했다

하루는 다시 멈추려는 시간을 일으켜세우기 위해 혼신을 다해 게임을 했다 이번 판을 꼭 끝내고 다음 판에 도전 세상에서 가장 진지하고 시덥잖은 표정으로 몰두했다
다행히도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잠들지 못하는 것은 괴롭고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수면부족은 수명을 단축시킵니다
좋은 말이다 인간은 이미 너무 오래 살게 되어버렸으니

시간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부정적 감정이 있었는데 아마 상실감이 맞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또 상실감이 아니었을수도 있지만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상실감
정도가 맞을 것이다

처음에는 자책감과 원망감이라고 생각했다. 초반에는 그랬던게 분명하다.

멈춘 시간을 다시 밀어붙여 그 시간을 나도 따라가고 내가 앞서 달리며 시간을 잡아당긴다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상실은,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셀 수 없고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는 지경이라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것을 포기했다. 대체하거나 새로 갖추는 것도 포기

내가 할 수 있는건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상실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견디는 것
자포자기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상실 상태를 받아들여 먼지 한조각이 되어 매일을 살아가는 것
이것도 노력과 의지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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