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정'에 해당되는 글 1건

근황

Pulmaya 사는이야기 2012. 6. 24. 21:54

세상 참 좋아졌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기차 안에서도 쓱싹쓱싹 이것저것 할 수 있는게 많아졌다. 서울에서 기차로 한시간 반이 조금 더 걸리는 거리에 새로운 일자리와 보금자리를 마련한 지 열흘만에 서울에 다니러 왔다 귀가하는 길이다.

 

예전에는 블로그에 글 한 번 쓰려고 마음먹고 나서도 노트북 켜고 키보드위에 가지런히 손가락 올려놓고 심호흡도 좀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워낙 스마트한 세상이다 보니 글을 쓰는 시간보다 글쓰기를 마음먹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듯 하다.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워가며 쓰는 글의 무게와, 컴퓨터로 쓰는 글의 무게가 다르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 '폰'으로 글을 쓰니 이런 글의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가볍게 쓰되 가벼운 글은 쓰지말아야 할텐데.

 

어느 시점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 속에 있는 것 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한 오년 전 까지만 해도 나는 사람들 속에 있지 않으면 외로워 죽을 것 같던 사람이었다. 왜 그렇게 심하게 외로움을 탔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준비되지 않은' 독립때문이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04년 여름,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후 복학할 무렵에 나는 처음으로 독립이란걸 하게 됐다. 어학연수 중 갑자기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집이 몽땅 지방으로 이사를 가버린 탓이었다. 대학 생활에서 자취와 독립이 반드시 고된 일만을 아니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독립할 몸과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된 채 '버려지듯' 혼자 살아야 했다. 비관적인 집안 상황과 낯선 환경, 독립과 동시에 내 생활에 소요되는 모든 경제적 책임까지 감당해야 하는 조건에서의 독립. 학번나이로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너무 힘들었고 독립을 한다는 해방감보다는 좌절감과 우울감만 확대해석되어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그때부터는 모든게 전쟁이었다. 먹고 마시고 돌아다니고 씻고 빨래하고 심지어 싸는 것에도 비용이 들어갔다. 전기, 가스, 수도, 건물 관리비 어느 것 하나 '돈' 아닌 것이 없었다. 대학교 2학년 짜리가 학교다니면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벌어봤자 얼마나 벌었겠는가. 연명하고 생존하는 것 때문에 죽을만치 힘들었다. 학교 다니고, 아르바이트하고, 집에 들어와 자고 다시 일어나서 학교 가고, 아르바이트 하고...... 정말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었던 때였다. 그러고 나서 참 외로움을 많이 탔던 것 같다. 그래서 혼자 있는게 너무 힘들고 버겁고 공포스럽기까지 해서 늘 사람 많은데를 찾아다녔던 것 같다. 그렇게 한 학기 반 년 가까이를 혼자 살다 일년은 학교 선배와 같이 살고 난 후 일 년 반 만에 집이 서울로 이사와서 다시 가정의 품으로 돌아갔다. 일 년 반만에 살림을 합치고 나니 어느새 독립에 적응해버린 나머지 참으로 불편한 것들이 많았다. 날개죽지에 붙어있던 투명한 날개가 툭- 꺾여버린 느낌이랄까-

 

이제 육년 만에 다시 독립을 했다. 이번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고 학교도 다니지 않는다. 집에 혼자 있어도 더 이상 외롭거나 무섭거나 우울하지도 않다. 내 인생에서 마지막 독거라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해보고-그래봤자 먹고 싶은 거 맘대로 해먹기, TV 채널 내맘대로 골라보기 정도- 자유를 누리며 지내련다. Carpe diem!

 

-나랑 같이 사는 식구들. 왼쪽 치즈양. 오른쪽 이름 아직 못지었음;;

'Pulmaya 사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실  (0) 2012.10.23
태풍성장  (0) 2012.08.31
test  (0) 2012.06.24
머리 가슴 배  (2) 2012.05.24
거듭나기  (6) 2012.03.09
블로그 이미지

Pulmaya

,